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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잔치 막아라’ 숙제에… 금융당국, 은행 '성과급 파티' 정조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금융당국이 은행의 성과급 지급 체계를 점검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돈 잔치’를 직접 겨냥한 가운데, 성과보수체계를 개선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벌어들인 단기 이자 수익의 과실이 ‘성과급 파티’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은행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확대도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금융당국이 은행 성과급 제도의 적정성을 들여다보기로 햇다. 국내 4대 은행의 간판.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은행 성과급 제도의 적정성을 들여다보기로 햇다. 국내 4대 은행의 간판. 연합뉴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우선 은행 성과급 제도의 적정성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임원 회의에서 “성과 보수체계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의 취지와 원칙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지난해부터 금리가 급격히 오르며 서민들이 ‘이자 폭탄’에 허덕이는 동안, 은행은 막대한 이자 이익을 거두고 그 과실을 성과급 형태로 온전히 가져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는 지난해 15조8506억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이자로 벌어들인 돈만 39조6735억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주요 은행은 지난해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200~300%에 이르는 성과급을 줬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성과급 지급 규모는 1조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또 은행들은 지난해 말 이후 퇴직자에게 1인당 평균 6억~7억원의 퇴직금을 안겼다.

금융당국은 성과급 과다 지급을 막기 위해 ‘성과급 이연 지급제’가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연성과급은 성과급을 한 번에 지급하지 않고 여러 해에 걸쳐 나눠주는 제도다. 현재 금융회사 임원 및 금융투자업무담당자에 대해서는 성과보수의 40% 이상을 3년 이상 이연해 지급해야 한다. 연말 성과급으로 1억원을 책정했다면 먼저 6000만원을 주고 나머지 4000만원은 3년간 성과 평가를 재산정해 지급하는 식이다. 금융권이 단기 성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관행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다.

이 원장은 “은행의 성과 평가 체계가 단기 수익 지표에만 편중되지 않고 미래 손실 가능성 및 건전성 등 중장기 지표를 충분히 고려토록 하는 등 미흡한 부분은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이연성과급제 대상 확대 등을 검토한다. 과다한 성과급을 줄이는 대신 미래 위험 대비를 위해 은행이 충당금을 더 쌓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은행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규모도 커질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은행의 사회공헌 기금 확대가 논의된다. 은행권은 향후 3년간 총 5000억원 규모의 재원을 공동으로 조성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는 은행의 막대한 이자 수익에 비해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 원장은 이날 “생색내기식 노력이 아닌 보다 실질적이고 실제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상생금융 프로그램에 대한 경쟁 촉진을 위해 금융사별 사회공헌활동을 공개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금융지주를 포함한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개선안 준비도 속도를 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주인 없는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선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금리 수익으로 은행권이 퇴직금·성과급 등 '돈잔치'를 하는 것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 모습. 연합뉴스

고금리 수익으로 은행권이 퇴직금·성과급 등 '돈잔치'를 하는 것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 모습.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2023년 금융발전심의회 전체회의’에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강화·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조속히 세부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해외 사례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통해 시장 참여자의 과도한 부담을 방지하면서도 실효성 있고 국제 정합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다음 달 초에 ‘기업지배구조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기로 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정부의 개입이 은행의 사회적 역할 강화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금융당국의 금리 개입이 시장 왜곡을 낳고 은행의 이자 장사를 결과적으로 도운 측면이 있다”라며 “은행 스스로 적정 예대 마진을 유지하도록 은행 간 경쟁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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