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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외면한 시신, 정성껏 모셨다…그렇게 210명 배웅한 사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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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9일 경기 군포시의 한 병원 장례식장 안치실. 무연고 사망자 고 김모(향년 95세)씨의 시신이 안치된 냉동고 문을 열자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시신은 부패가 진행돼 피부 곳곳이 벗겨졌고 군데군데 시반(屍斑)도 보였다. 그가 입은 환자복은 시신에서 흘러나온 진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는 지난해 마지막 날 지병으로 병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찾으러 오는 친지는 없었다. 시신은 한 달여 간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좁은 냉동고 속에 머물렀다.

시신 상태는 처참했지만 김씨의 장례를 맡은 박경조(58) 돌보미연대 사무총장은 덤덤했다. 시신을 의료용 카트에 옮긴 그는 염습실로 이동해 시신을 잘 닦은 뒤 다시 관으로 옮겼다. 시신 위에는 수의 한벌이 놓였다. 그는 “웬만하면 수의를 입혀드리는데, 어디든 조금만 손을 대도 피부가 벗겨지는 상태라 입고 가시라고 덮어드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11일 경기도 군포시의 한 병원에서 무연고 사망자 김씨와 배씨의 시신이 운구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지난 11일 경기도 군포시의 한 병원에서 무연고 사망자 김씨와 배씨의 시신이 운구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이틀 뒤엔 봉사자 18명과 함께 김씨의 발인식을 치렀다. 다른 무연고 사망자 배모(62)씨 발인식도 이날 함께 이뤄졌다. 두 사람 모두 찾아올 가족도 지인도 없어 빈소는 따로 차리지 않았다. 화장지인 충남 천안추모공원까지는 차로 약 2시간이 걸렸다. 장례비를 아끼기 위해 화장 비용이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았다. 지자체가 160만원을 지원하지만, 보통 장례에 드는 비용이 200만원 안팎이라 항상 부족하다. 화장이 끝난  두 사람의 유골은 박 사무총장이 준비해온 유골함에 담겨 화장장 뒤편 유택동산으로 이동한 뒤 뿌려졌다.

사망자에게 가족이나 친지가 없거나, 있어도 시신 인수를 포기할 경우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자택에서 사망자가 발견되면 경찰이 타살 여부를 조사한 뒤 지자체에 시신을 인계하고, 지자체는 사망자 인적사항을 일간지 등에 한달간 공고한다. 그래도 연락이 없으면 공영장례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지자체는 박 사무총장이 속한 돌보미연대와 같은 비영리 법인 및 단체, 민간기관 등에 장례지원을 위탁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6년 1820명에서 2021년 3488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산업 폐기물’ 취급에 충격받아 시작… 210명 마지막 길 배웅

박 사무총장이 공영장례 봉사에 나선 건 2018년부터다. 그 전까지 18여년 간 장례식장에 꽃을 납품 해온 그는 “무연고 사망자들의 시신이 마치 산업 폐기물처럼 처리되는 것에 충격을 받아 봉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장례 절차 없이) 앰뷸런스 차에 시신을 싣고 가 화장만 하고 오는 걸 장례업계 용어로 ‘퐁당’이라고 한다. 비용이 많이 안 들고 돈이 많이 남아 업체 대부분이 그렇게 한다. 화장만 하고 유골을 종이 봉투에 담아 쌓아두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천안 추모공원에서 박경조 돌보미연대 사무총장과 봉사자들이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1일 천안 추모공원에서 박경조 돌보미연대 사무총장과 봉사자들이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장례를 치러준 무연고 사망자는 약 210명에 달한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도 없고 감시하는 눈도 없지만 그는 되도록 엄격하게 장례 절차를 지킨다. 매번 시신을 일일이 닦고 분을 칠한 뒤 수의를 입혀 관에 넣고, 운구하는 봉사자들에겐 꼭 흰 면장갑을 끼도록 하는 식이다. 영정 사진이 없으면 집주인에게 허락을 구해 직접 고인이 살던 집을 뒤지거나, 지인들에게 대신 연락해 사진을 받아낸다. 시신 인수를 포기한 가족들에겐 “장례라도 오시라. 평생 후회하실지 모른다”며 전화를 돌리기도 한다.

“장례는 존엄의 문제… 영화 ‘스틸라이프’ 주인공이 롤모델”

그에게는 장례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문제”여서다. 박 사무총장은 “어떤 시신은 들개 때문에 신체 한 부분이 사라져 있고, 아예 하반신이 사라진 경우도 봤다”며 “죽음마저도 가진 게 있는 사람들의 경우만 존중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영화 ‘스틸라이프’의 주인공이 롤모델”이라는 그는 애초에 1000명의 장례를 치러주는 걸 봉사의 목표로 삼았다. 비록 건강 문제 때문에 최근 기준을 500명으로 낮춰야 했지만, 봉사를 멈출 생각은 없다. 두 사람의 발인까지 모두 마친 그는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켜나가야만 한다”며 다시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11일 박경조 돌보미연대 사무총장(왼쪽)과 봉사자들이 김씨와 배씨의 유골을 유택동산에 뿌리고 있다. 이병준 기자

지난 11일 박경조 돌보미연대 사무총장(왼쪽)과 봉사자들이 김씨와 배씨의 유골을 유택동산에 뿌리고 있다. 이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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