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구내 무단복사 유 무죄 법정공방|『사적이용』한계 해석이 쟁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서울형사지법이 20일 대학구내에서 복사영업을 해온 정영칠씨(43·서울 남가좌동)에 대한 약식기소사건을 이례적으로 통상재판에 회부함으로써 그 동안 이 사건 법적용을 둘러싸고 빚어진 유 무죄논란이 법정공방을 통해 가려지게 됐다.
약식기소 사건은 검찰이 구하는 벌금액에 준해 서류검토만으로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이 관례인 만큼 이번 판사직권의 통상재판 회부는 정씨 행위가 과연 실정법에 어긋나는지 여부와 함께 실정법에 어긋난다고 해도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일반의 법 감정까지 반영한 결정으로 보인다.
우선 법 해석의 면에서 앞으로 진행될 재판의 주요쟁점은 저작권법 제27조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의 법 적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조항은 87년 7월 개정·시행된 저작권법이 저작물의 공적이용을 도모하기 위해 저작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여러 조항중의 하나로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 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통상재판에 회부하면서 이 조항과 관련, 『대학생의 순수한 학습참고 목적을 위해 책 전체의 극히 일부를 1인 1부에 한해 1장에 20원이라는 실비에 가까운 요금으로 대리 복사해 준 행위를 제27조와 결부시킬 경우 가벌성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사건기록만으로는 이번 44페이지 복사 행위만을 문제삼는 것인지, 아니면 그 동안 반복적으로 불특정다수에게 1인 1부 이상을 복제해 왔을 개연성까지 포함하는지 여부가 명확치 않아 재판진행과정에서 사실관계를 면밀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검 정진섭검사는 『사적이용 목적이라도 엄연히 영업목적의 복사 점에서 복사가 행해졌고 복사주체와 복사물이용주체가 일치하지 않는 만큼 정씨의 행위가 제27조의 적용을 받아 허용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저작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정씨를 고소한 대한출판문화협회도 『저작권법 제27조는 일정한 요건만 충족되면 자유롭게 복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복사기 등 복제기구가 소형화·저렴화 돼 각 가정에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추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며 『제도적으로 사적이용의 요건을 강화하든지 현행조항을 보다 엄격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주장도 만만치 않다.
복사업계나 연구·조사기관 등에서는 『제27조를 지나치게 엄격히 해석 적용할 경우 지금까지 학생 등 연구자 층에서 타인 저작물의 사적이용을 위해 주로 복제업자에게 위탁해 복제해온 현실을 감안할 때 위탁복제를 당장 모두 불법이라고 보고 형사처벌 할 수밖에 없게돼 저작물의 공익기여역할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또 이번 사건이 저작권법 제28조에 「도서관등에서 조사·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이용자 요구에 따라 공표된 저작물 일부분의 복제물은 1인 1부에 한해 제공할 수 있다」는 허용규정과의 형평성 여부도 가러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홍승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