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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마르타 아르헤리치 『아르헤리치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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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아르헤리치의 말

아르헤리치의 말

모든 것이 내가 피아노를 못 칠 거라 도발했던 어린이집 남자아이에게서 시작됐다. 사람은 도전에 몸을 던지면서까지 세상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기 원한다. 그런 게 재능이다. 어릴 때는 몰랐다. 나중에 책 『영재의 비극:진정한 자기를 찾아서』를 읽으면서 사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잘하고 싶어 한다. 바흐가 신의 마음에 들고자 했던 것도 결국 다르지 않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아르헤리치의 말』

“우리는 재능이 과연 무엇인지 썩 잘 알지 못해요. 재능이 신의 산물인지 노력의 결과인 것인지, 그 둘 다인지 그것조차 확실히 모르죠. 나는 재능이란 노력이 따라줬을 때 원활하게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80대에도 현역인 ‘피아노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인터뷰와 단문 모음집이다. 윗 구절을 종합하면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잘하고 싶은 것에 노력을 다하는 것’이 재능이라는 게 천재 피아니스트의 말이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피아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프리드리히 굴다를 인용하며 아르헤리치는 악기 안으로 깊게 들어가면 “반죽을 손으로 주물러가면서 놀 때처럼 기분이 좋다”고 표현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악기 안으로 들어가기 힘든데, 그 컨디션도 연습에 달렸다. 피아니스트가 꾸는 악몽은 무대에 올라 들어본 적 없는 작품을 연주하는 꿈이고, 한때는 오케스트라의 여자 첼리스트들이 첼로를 허벅지 사이에 끼우지 않고 두 다리를 모은 채 연주했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