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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체 ICBM 꺼냈다…김정은, 무언의 도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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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맨 왼쪽)이 북한 건군절 75주년을 맞은 지난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이동식 발사차량(TEL)에 실린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종 무기를 사열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하는 검은 중절모와 코트 차림으로 주석단에 올랐다. 둘째 딸인 김주애도 김 위원장 옆에서 이날 열병식을 관람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맨 왼쪽)이 북한 건군절 75주년을 맞은 지난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이동식 발사차량(TEL)에 실린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종 무기를 사열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하는 검은 중절모와 코트 차림으로 주석단에 올랐다. 둘째 딸인 김주애도 김 위원장 옆에서 이날 열병식을 관람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8일 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이설주 여사와 딸 김주애와 함께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형 미사일을 공개했다. 또 최소 11기의 ICBM 화성-17형을 열병식에 동원했다. 미국 본토를 향한 위협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코트에 중절모 차림을 한 김 위원장은 육성 연설을 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열린 총 13차례의 열병식에서 다섯 번 직접 연설했다. 이날도 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정주년)에 해당하는 건군절 열병식인 만큼 공개 연설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대신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9일 보도한 사진에서 화성-17형 뒤를 이어 행진의 마지막을 장식한 신형 미사일을 공개했다. 이 미사일은 5대의 이동식 발사대(TEL)에 실려 있었는데 TEL은 한쪽에 9개씩 양옆 18개 바퀴를 달았다. 한쪽에 11개씩 양옆 22개 바퀴를 단 ‘괴물 ICBM’(사거리 1만5000㎞) 화성-17형의 TEL에 비하면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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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년 4월 열병식에 등장한 8축 16륜짜리 TEL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에도 고체연료 ICBM을 싣는 TEL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만약 고체연료를 사용한다면 액체연료를 쓰는 화성-17형급 사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미사일과 TEL의 길이를 줄일 수 있다.

최근 북한은 신형 고체연료 ICBM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신속한 핵 반격 능력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또 다른 ICBM 체계를 개발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북한 매체는 지난해 12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출력 고체연료 발동기(엔진) 지상 분출시험을 실시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고체연료는 액체연료와 달리 미사일 발사 준비시간이 짧고 연료를 실은 채 장기간 보관도 가능해 사전 포착이 어렵다.

화성-17형 미사일 11기 무더기 등장…“양산 단계 진입한 듯” 

지난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창건일(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둘째 딸 김주애가 밝게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주애를 지칭해 ‘사랑하는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분’이라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은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지난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창건일(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둘째 딸 김주애가 밝게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주애를 지칭해 ‘사랑하는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분’이라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은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북한은 기존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 같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에 이미 고체연료 기술을 적용했지만, ICBM급 미사일은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이날 공개된 신형 미사일이 ‘목업(mock up·모형)’일 가능성도 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북한이 연소시험을 공개한 고체연료 로켓엔진에 비하면 이번 신형 미사일이 지나치게 커 바로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엔진 연소시험 등을 빠르게 진행하면 올해 상반기 중에도 고체연료 ICBM의 시험발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날 열병식에서 최소 11기의 화성-17형이 무더기로 등장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화성-17형은 그동안 열병식에선 4~6기가 동원됐다.

통신은 “공화국의 최대 핵공격 능력을 과시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종대들이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류성엽 전문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화성-17형이 이제 양산형 모델로 진입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핵무력 강화를 강조하면서 핵·미사일의 보유량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정황은 이미 포착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 전원회의 보고에서 “우리 핵무기의 제2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며 “현 정세가 나라의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최근 북한이 목표로 하는 핵탄두 보유량이 300여 기에 이르며 이미 80~90기를 보유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화성-17형의 대거 공개 역시 미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남한과 주일 미군기지를 겨냥한 북한 전술핵운용부대도 이날 열병식에 처음 참가했다. 북한 매체는 전술핵운용부대가 지난해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훈련했다며 해당 부대의 존재를 처음 알렸다. 북한은 지난해 4월 김 위원장 참관하에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시험발사했을 당시 “전술핵 운용의 효과성과 화력 임무 다각화를 강화한다”며 “앞으로 전술핵무기는 최전선 포병부대에서 운용한다”고 밝혔다. 해당 부대는 전술핵을 탑재한 KN-23 또는 초대형 방사포인 KN-25 등 SRBM 운용을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6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깃발에 새긴 명칭으로 처음 등장한 ‘미사일 총국’ 조직의 존재도 이날 다시 확인됐다. 이 조직은 탄도미사일을 직접 운용하는 부대인 ‘전략군’과 별개로 미사일 개발을 총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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