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학의 의학계열 전공자 10명 중 4명은 졸업 후 수도권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부터 의약학계열 지역인재 의무 선발 비율을 40%로 확대하는 등 우수 학생을 지역에 정주시키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지역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국회 교육위원회 김병욱(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7~2021년) 지방대 의학계열(의학·치의학·한의학 등, 대학원 제외) 졸업자 중 근무지가 확인된 1만3743명 가운데 5923명(43.1%)이 지역을 떠나 서울·인천·경기 지역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인재전형 선발자도 졸업 후 수도권으로
특히 강원, 충청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 졸업생일수록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강원도는 2439명 중 1674명(68.8%)이 의학계열 졸업 후 수도권에 취업했다. 강원도 내에 취업한 졸업생은 368명으로 15.1%에 불과했다. 충청도도 3620명 중 1901명(52.5%)이, 경상도와 전라도는 10명 중 3명꼴로 수도권에 취업했다.
지역인재전형 입학생조차 졸업 후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전라도 지역의 한 의대는 지역인재전형으로 신·편입학해 2021~2022년 졸업한 학생 36명 중 7명(19.5%)이 서울로 취업했다. 경상도의 한 의과대학도 2018~2022년 졸업한 지역인재전형 신·편입생 92명 중 14명(15%)이 수도권으로 거취를 옮겼다.
지역인재전형은 해당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자가 지원할 수 있다. 2028학년도부터는 ‘비수도권 중학교 및 해당 지역 고등학교 전 교육과정 이수·졸업자’로 자격 요건이 강화된다. 지방 출신이 아닌데도 의대 진학을 위해 고교만 지방으로 옮기고, 졸업 후엔 지방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의대 중도 이탈 74%가 지방대…“의대도 대학간판 중요해”
지방 의대는 수도권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자퇴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대학정보공시 자료에 따르면 의대 중도 이탈 학생 수는 2020년 185명에서 2022년 203명으로 늘었다. 최근 3년간 의대 중도 이탈 학생 중 74.2%(416명)가 지방대 출신이다. 의대는 중도 이탈 사유 90% 이상이 자퇴다.
비수도권 의대 자퇴 후 서울의 한 의대에 다시 입학한 A(21)씨는 “환자들도 서울 의대 출신 병원을 선호하니 선배들조차 ‘가능하면 반수 해서 서울 가라’고 할 정도였다”며 “지방에서 개원해 잘 살 수도 있겠지만 수도권으로 가고 싶을 때 받아주는 곳이 없을 것 같아 지금 바꾸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교육계 일각에선 지역인재전형 비율이 늘면서 지방 의대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북의 한 의대 지역인재전형 합격선은 288.9점(국·수·탐 환산점수)으로 일반전형 합격선(294.6점)보다 5.7점 낮다. 대부분 의대가 지역인재전형의 합격선이 낮고, 경쟁률도 낮은 편이다.
“외국은 지방 개원 시 보조금 지급…유인책 마련해야”
지역별 의사 수 차이는 점차 벌어지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종사 의사 수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은 4.7명인데 반해 경북은 2.1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10년 전인 2011년 서울(3.5명), 경북(1.8명) 격차보다도 더 벌어졌다.
경상도의 한 의대 교수는 “과거엔 자격증만 있으면 되니까 대학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의사도 개업이나 취업할 때 대학 간판이 중요해졌다”며 “서울 명문대 학생이 의대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한다는데, 의대 내에서도 수도권·지방 평판도 차이가 커졌다”고 했다. 또 다른 경상도의 의대 교수도 “KTX로 4시간이면 서울까지 갈 수 있으니 응급을 제외한 환자 대부분이 서울에서 진료받고 싶어한다”며 “지방의대에 대한 평판이 낮아질수록 수도권 의사·환자 집중 현상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우수 인재를 붙잡기 위해선 좀 더 적극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김계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외국의 사례처럼 의료 취약지에 의사들이 공동 개원할 때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간호사 등 보조 인력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의사가 지역 근무를 꺼리는 이유, 현재 및 장래의 지역 의료 수요 등을 정확히 파악해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