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과잉에 근본적 대책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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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쌀이 남아 돌아 사료용으로라도 처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쌀의 수급상황을 보면 10년간 계속된 풍작으로 공급이 수요를 웃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가소득 보장을 위해 정부가 매년 전체 생산량의 20∼25%를 수매함으로써 가격조절용으로 필요한 물량을 방출하고도 지난 10월말 현재 정부 보유미가 1천3백10만 섬에 달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올해 수매예정량 7백50만 섬을 합하면 2천만 섬을 넘어 보관능력을 넘기 때문에 그 처리가 문제되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미 보관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 1백만 섬을 1년간 보관 관리하는 데 3백40억원이 들고 수매대금과 이자까지를 합하면 그 부담은 1천4백억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1백만 섬을 보관하는 데 그 정도 비용이 드니 2천만 섬을 보관하자면 보관비용만 6천억원 이상이 들고 수매 후 방출되지 않는 물량의 수매대금까지를 계산하면 2조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는 것은 손쉽게 계산해 낼 수 있다.
정부내 일부에서 쌀의 사료용 처분얘기가 나온 것은 이처럼 엄청난 재정부담을 안으면서 남아 도는 쌀을 계속 보관하고 있어야 하느냐는 논리적 귀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대상도 이미 너무 오래돼 소비자들이 기피하는 85,96년산 1백54만 섬 정도에 국한하자는 것으로 들린다.
그동안 정부는 남아 도는 쌀의 소비촉진을 위해 쌀라면·쌀과자·쌀막걸리·쌀청주 등의 생산을 허용해 왔고 최근에는 쌀 많이 먹기 캠페인까지 벌여 왔다. 그런데도 쌀을 사료용으로 처분하자는 의견까지 내 놓았다니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경제적 측면만 따진다면 사료용으로라도 처분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에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쌀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온 농민들의 심정이나 농민이 아니더라도 쌀을 중히 여겨온 우리의 전통적 관념에서 볼 때 이같은 발상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쌀 문제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고온 정부의 양곡정책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양곡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한쪽에서 쌀이 남아 돌아 사료용으로라도 처분하겠다고 하는 반면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1만명 내외의 결식 아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 중 끼니를 굶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는데 가축에 쌀을 먹여야 한다면 쌀의 합리적 수급을 책임져야 할 정부의 양곡정책에 잘못이 있어도 크게 있다는 애기가 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같은 상황을 빚은 데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점이다.
추곡수매 논의가 나올 때마다 정치권은 농민의 소득보장문제만 앞세워 수매가를 올리는 데는 열을 올렸지만 추곡수매정책이 전체 주곡의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나 남아 도는 쌀의 처리문제는 무책임하게 남의 일로 생각해 오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적어도 국회가 추곡수매문제를 다룰 때는 이와 관련되는 모든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검토,국가경제 전체를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안목에서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주곡의 적정한 수급문제는 농림수산부나 나아가 행정부간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국민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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