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일만에 정찰풍선 격추…美 방중 취소 부른 中행각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대륙을 횡단한 중국 정찰 풍선이 4일(현지시간) 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영공에서 격추됐다. 미국 국방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 전투기 F-22와 구축함 등 군 자산을 동원해 작전을 폈고, 가라앉은 풍선 잔해와 정찰 정보 수거 작업에 들어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출발 몇 시간 전 방중을 전격 취소한 데 이어 중국이 미국의 풍선 격추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가 얼어붙고 있다. 향후 미 당국의 잔해물 분석 과정에서 민감한 내용의 위성사진 등이 발견될 경우 미·중 관계에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거란 전망이 나온다.

美 국방부, 영공 진입 일주일 만에 中 정찰 풍선 격추 #"F-22 전투기가 미사일 발사, 구겨진 크리넥스됐다"

 미국 국방부는 4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상공에서 중국 정찰 풍선을 격추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국방부는 4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상공에서 중국 정찰 풍선을 격추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지시에 따라 미 북부사령부 소속 전투기가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영공에서 중국이 보내고 소유한 고고도 정찰 풍선(high altitude surveillance balloon)을 성공적으로 격추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미 공군의 F-22 '랩터' 전투기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약 6만 피트(약 18㎞) 상공에서 공대공 미사일로 중국 정찰 풍선을 격추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주 랭글리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랩터는 이날 오후 2시 39분께 5만8000피트(약 17.6㎞) 상공에서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AIM-9X 사이드와인더 한 발을 쏴 6만2000피트(약 18.8㎞) 상공에 있던 풍선을 명중했다.

작전에 참여한 랩터 콜사인(무선호출 부호) 프랭크1과 프랭크2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정찰 풍선 14개를 격추한 프랭크 루크 주니어 육군 항공대 중위 이름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미 국방전문매체 디펜스원은 보도했다. 작전에는 매사추세츠주 방위군 소속 F-15 전투기와 오리건·몬태나 등에서 출격한 공중급유기가 동원됐다. 바다에는 해군 구축함, 순양함, 상륙선거함이 잔해 수거를 위해 대기했다. 작전에 앞서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주 공항 세 곳에서 항공기 이착륙이 중단됐다. 현재까지 민간 또는 군의 사람이나 항공기·선박이 입은 피해는 없다는 게 국방부 초기 평가다.

풍선과 그에 장착된 고해상도 카메라 등 스쿨버스 3대 크기의 장치는 약 5분간 낙하해 미국 영해에 떨어졌다. 잔해는 수심 47피트(약 14m) 깊이 바닷속 약 7해리(약 13㎞)에 걸쳐 흩어져 있다. 군 당국이 각오했던 것보다 수심은 깊지 않지만, 작업 완료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예측할 수 없다고 고위 당국자가 밝혔다. 고해상 카메라 등 정찰 장비가 수거되면 버지니아주 콴티코에 있는 연방수사국(FBI) 연구소로 보내 수사를 시작한다. 미 당국은 중국이 수집한 정보와 정찰 기술력을 파악하고 5개 대륙에 걸쳐 발견된 중국 정찰 풍선 함대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4일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4일 모습. AP=연합뉴스

국방부는 일주일 전 중국 정찰 풍선이 영공에 진입하기 전부터 존재를 인지하고 면밀히 추적해 왔다고 밝혔다. 풍선은 지난달 28일 알래스카주 서쪽 끝 알류샨 열도에서 미국 영공에 진입했다. 30일 캐나다 서남부 영공을 지나 31일 다시 미국 아이다호주로 넘어왔다. 이후 동쪽으로 이동해 몬태나주, 미주리주, 노스캐롤라이나주를 거쳤다.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인근에서 대서양 상공으로 빠져나간 직후 작전이 이뤄졌다.

머틀비치는 유명 관광지다. 일부 주민은 해변에서 격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주민을 인용해 풍선이 해안선을 넘자마자 전투기가 다가가 미사일을 발사했다면서 "희고 동그란 공이 갑자기 구겨진 크리넥스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중국 정찰 풍선이 민감한 시설이 있는 지역을 훑고 지나가면서 미국에선 정보 노출 우려가 나온다. 풍선이 육안으로 목격된 몬태나주에는 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 150기가 지하 사일로(고정식 발사장치)에 설치된 말름스트롬 공군기지 등 군사 시설이 있다. 스티브 데인스 상원의원(몬태나·공화당)은 국방부에 보낸 서한에서 "풍선이 몬태나 영공을 점령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말름스트롬 공군기지와 미국 ICBM이 정보수집 임무의 표적이라는 상당한 우려가 있다"고 했다. 오스틴 장관은 풍선이 "미국 대륙의 전략적 입지를 감시하기 위해" 사용됐다고 봤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수요일(2월 1일) 풍선에 대해 보고받을 때 국방부에 가능한 한 빨리 풍선을 격추하라고 명령했다"면서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은 바다로 빠져나간 뒤 12마일 이내 지점에 있을 때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민간 피해가 없도록 풍선이 바다로 이동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되 영해 12해리를 벗어나기 전 격추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오스틴 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풍선을 격추하지 말 것을 권고했고 대통령은 참모들 권고를 받아들였다고 전한 바 있다. 군 수뇌부는 풍선이 거대하고 지상에서 6만 피트 위에 있어 격추할 경우 파편이 넓게 퍼져 지상 사람과 시설에 위험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풍선이 격추되면서 '에어쇼'는 일단락됐지만, 중국이 6년 만의 미 국무장관 방중을 앞두고 왜 이 같은 일을 벌였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첫 대면 정상회담을 하고 고위급 교류를 통해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합의했다. 후속 조치로 블링컨 장관이 5~6일 베이징을 방문해 시 주석과 왕이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을 만날 계획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한·미 외교장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 대륙 위로 정찰 풍선을 비행시키기로 한 중국의 결정은 용납할 수 없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이것이 중국 정찰 풍선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며 중국이 정찰 풍선을 민간 비행선으로 부르고 기상 관찰 등 과학연구용이라고 해명한 것을 반박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