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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앙시평

미국은 북한을 포기해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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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직후 미국의 전직 관료와 함께 대외정책 관련 회의에 참여했다. 그는 중국 대응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며 한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북한 이슈는 당분간 제쳐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더 중요한 위험 요인은 중국이겠지만 북한은 더 임박한 리스크다. 북한 문제를 풀지 못하면 중국 대응이 더 어려워진다.” 그 후 미국 정부가 내놓은 ‘북한 정책리뷰’는 “조율된 실용적 접근”으로 비핵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디테일은 보이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미국은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혔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비핵화는 어차피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현 상태로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다음 이유로 미국의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

북한 문제 중국보다 임박한 위험
미국은 핵 대응 우선순위 높이고
북한을 더 세게 밀고 끌어당겨야
한·미는 북한 주민 포기해선 안돼

첫째, 의도적 방치는 북한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 미국의 대북 집중도 하락은 세계 각국에 제재를 이완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비핵화를 추동하는 구조도 무너진다. 북한 비핵화 가능성은 아직 있다. 필자가 2016∼17년 대북 경제제재를 제안했던 이유는 김정은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압박을 통해 그가 직면하는 구조를 바꾸어야 북한 비핵화의 입구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김정은의 자발적 의사를 기준으로 비핵화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 같다. 이는 가정부터 잘못 세운 채 문제를 풀려는 셈이다. 구조를 보지 못하고 김정은의 입을 믿은 지난 정부는 너무 이른 협상을 추진하다가 비핵화의 문을 열지 못하고 실패했다. 만약 미국의 정책도 김정은의 입을 바라보는 수준으로 추락하면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둘째, 북핵 문제를 군사적 억지로만 대응하면 한·미 균열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정책 우선순위에서 빼게 되면 북핵에 대응하는 한국의 군사적 수단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북한의 도발이 심해질수록 한국 여론은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로 쏠릴 것이며 한국 정부도 이런 여론을 마냥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올해는 북한 도발이 작년보다 훨씬 거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남한 여론이 크게 들썩이고 여기저기서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를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하거나 전술핵 재배치에 동의할 수 있을까. 잘못하면 퇴로가 차단된 좁은 골목에서 한·미가 충돌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이는 북한이 의도하는 바겠지만 위험한 시대를 함께 헤쳐나가야 하는 한·미엔 악몽이다.

셋째, 미국의 북한 포기는 북한을 중국, 러시아로 떠미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의 북·중·러 관계는 ‘신뢰를 가장한 불신’ 혹은 ‘편의의 결혼’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미국의 관심이 떠났다고 판단하는 경우 북한은 중·러로 완전히 기울 것이다. 북·러는 군사적 거래를 주고받고, 북·중은 경제적으로 밀착하면 북한은 진정한 의미에서 군사 강국이 되고 경제적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북한을 제어하는 모든 수단이 사라지는 이때엔 비핵화란 말도 꺼낼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독재국가 3인방이 함께 힘을 합치면 전 세계에 미치는 위험이 몇 배나 가중된다. 우크라이나, 대만, 한반도에 동시적으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균형과 조합은 미국과 한국 대북정책의 핵심이다. 제재와 군사적 억지 강화가 북한의 등을 떠미는 힘이라면 경제개발과 평화체제를 통한 미국의 관여는 손을 잡아끄는 행동이다. 김정은처럼 무거운 사람은 이렇게 밀고 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미 정책결정자와 전문가가 밀도 있는 워크숍을 갖는 방법도 있다.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모아 상세한 행동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 2019년 미국의 정책결정자를 만났을 때다. 그는 먼저 북한의 식량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경제제재를 제안한 사람이지만 임산부와 아이들이 굶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북한 주민은 우리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리고 돌아와 그해 5월 “북한 식량 지원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중앙시평을 썼다. 수년 동안 칼럼을 써왔지만 그만큼 고통스럽게 쓴 글은 없었다. 한 줄을 쓴 후 마음이 아파 더 쓸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학교 뒷산에 올라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래도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정책결정자가 보여준 공감 덕분이었다. “교수님, 북한 주민이 나의 동포는 아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깊이 연민합니다. 그래서 힘을 다해 협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왜 제재하고 협상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간절했다.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들었고 유지하는 힘은 인간 존중이란 보편적 가치다. 그런 미국이 북한을 포기해선 안 된다. 지금보다 더욱 강하게 밀고 더욱 세게 끌어당겨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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