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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원배 논설위원이 간다

성큼 다가온 농업 자동화....환경·생육 데이터 확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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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스마트팜' 어디까지 왔나'

 김원배 논설위원

김원배 논설위원

커다란 비닐하우스 내부로 들어가니 일렬로 늘어선 좁은 탁자 같은 것이 보였다. 작물을 수경 재배하는 베드다. 안에는 방울토마토가 재배되고 있었다. 토마토 주변의 조그만 호스로 양분이 공급된다. 베드 안에는 코코넛 열매 껍질 가루로 채워져 있었다. 흙보다 가볍고 수분을 간직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센서·모니터로 최적 습·온도 유지 #초보 농부도 큰 어려움 없이 도전 #노동력 70% 절감, 수확도 늘어나 #시설비 부담에 보급률은 3% 수준 #로봇기술 접목, 수출 산업 가능성 #청년·농민 대상 교육 확대할 필요

충남 동천안농협 스마트농업지원센터의 비닐온실에서 방울토마토가 재배되고 있다. [사진 동천안농협]

충남 동천안농협 스마트농업지원센터의 비닐온실에서 방울토마토가 재배되고 있다. [사진 동천안농협]

 지난달 26일 눈이 많이 내렸기 때문에 상부엔 스크린이 나와 있었다. 이런 작업을 스마트폰에서 제어할 수 있다. 작물 생산을 위해서는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창문 개폐도 가능

 이곳은 농협중앙회와 동천안농협이 지난해 1월 개설한 스마트농업지원센터다. 시설 규모는 4000㎡(약 1200평)으로 농협이 조성한 첫 번째 센터다. 농민들이 직접 시설 투자를 하지 않고 스마트팜 영농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만든 곳이다. 지난해 10여가구가 교육을 받았고 최근 3가구가 스마트팜을 통한 영농을 시작했다.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에선 스마트팜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김기용 동천안농협 영농지도지원담당 상무는 “스마트팜을 채용하면 노동력이 70% 정도 절감되고 환경이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수확 횟수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온도와 습도, 채광을 유지하고 양분을 주는 작업이 자동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자동화만으로 ‘스마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마트팜의 핵심은 바로 데이터 활용에 있다. 옆 편 사무실로 들어가니 대형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23개 센서를 통해 들어오는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량, ph농도 등 온실 내부 상태가 표시돼 있었다.
 1단계 스마트팜이 온도와 습도 등 환경 정보를 파악한다면 2단계에선 센서를 통해 잎의 크기나 성장 수준 같은 생육 정보를 활용한다. 김기용 상무는 “환경 정보는 자동으로 수집하지만 생육 정보는 수동으로 입력을 한다. 스마트팜 단계로 보면 1.5단계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동화 단계가 높으면 그만큼 투자비가 늘어난다”며 “지금은 보급형 모델이 적절하다”라고 말했다.

 330㎡ 설치하려면 5000만원 들어

 통계청의 '2021년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전체 농가 103만1000가구 중 비닐하우스 등 시설을 설치한 곳은 14만6000가구였다. 이중 자동화된 스마트팜으로 분류될 수 있는 곳은 3만5100가구(3.4%)다.
 편리하지만 확산이 어려운 것은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기존 시설하우스를 개량하면 3.3㎡당 30만~50만원이 들고 신축하면 80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330㎡(약 100평)짜리 스마트팜을 설치하려면 5000만원 정도가 든다는 얘기다. 유리온실을 지으면 비용은 더 많이 들어간다. 농민들이 이 비용을 전부 투자해서 시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천안시와 동천안농협에서 대상자를 선정해 설치비를 지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년 전 천안으로 귀농해 사과대추 농사를 시작한 염수정씨는 지난해 이 센터에서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고 지난해 말 스마트팜을 신축했다. 염씨는 "전에는 비가 오면 문들 닫으러 가야 했는데 지금은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문을 여닫을 수 있으니 일손이 절감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날씨나 병충해에 따라 1년 잘하고 다음에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가 축적되면 꾸준한 생산량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간 스마트팜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 

 2020년 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원예·축산 스마트팜의 60% 이상이 데이터 저장은 하고 있지만 주로 개별 농장의 관리 차원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스마트팜에서 나오는 자료를 대규모로 수집해 빅데이터로 가공해야 가치가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수확량을 늘릴 수 있는 환경이나 생육 조건을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양종열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 스마트농업실장은 “농업 선진국이라는 네덜란드는 농가 간 생산 격차가 크지 않다”며 “환경·생육 데이터를 확보해 분석하면 초보 농가도 적정 수준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농정원은 스마트팜코리아 홈페이지를 통해 1200여개 스마트팜에서 얻은 자료를 제공한다. 우수 농가와 자신의 농가 데이터를 비교해 보는 기능도 있다. 데이터 확보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한 곳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성과가 뛰어난 민간 농가의 데이터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노하우가 집약된 만큼 제공하길 꺼리기 때문이다.
 서대석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업 생산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 단계를 아우르는 전 주기적 데이터를 수집·분석·활용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서 연구위원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민간 중심의 농업 컨설팅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정부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인프라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호환성 확대 위해 표준화 필요

 표준을 정하는 것도 과제다. 국내엔 여러 스마트팜 시공업체들이 있다. 농업인 입장에선 어떤 곳이 자신에 맞는지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또 업체마다 따로 만들게 되면 호환성 문제가 생긴다. 기본적인 표준을 정하면 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를 할 때도 편리하다. 정부 기관에서 스마트팜 기기와 수집 데이터 규격의 표준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를 계속 늘려가야 한다.
 교육도 중요하다. 농협중앙회는 동천안농협에 이어 서울 영동농협과 함께 지난해 11월 도시형 스마트팜을 만들었다. 이곳은 귀농·귀촌 교육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다. 경기 양평농협과 함께 짓고 있는 3호 센터엔 한화와 협력해 태양광 설비를 넣는다. 농협중앙회는 내년까지 16개 시도에 지원센터를 만들고 이곳과 농가에서 나오는 스마트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는 계획이다.
 염수정씨는 “스마트팜 설치 후 편해지긴 했지만 농사라는 게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전에는 농사의 절반은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스마트팜 농사는 지식이 절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IT기기나 기계를 잘 아는 게 큰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시설업체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땅 사고 집사는 게 귀농의 준비는 아닌 것 같다. 스마트팜에 관심이 있다면 교육을 받는 게 먼저”라고 조언했다.

 전국 혁신밸리 4곳서 청년농 육성

 정부가 청년농 육성을 위해 대규모로 조성한 스마트팜 혁신밸리도 있다. 경북 상주, 전북 김제, 경남 밀양, 전남 고흥 등 4곳에 조성됐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한 상주 혁신밸리는 실습농장과 실증온실, 임대온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임대온실은 규모가 9만7500㎡(약 3만평)에 달한다. 기존 농업인이나 청년농에게 시설을 빌려주고 있다. 실증온실에선 스마트팜 업체들이 기자재를 실험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2027년까지 매년 청년농 5000여명을 신규 육성하고 시설원예·축사의 30%를 스마트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 2027년까지 주요 곡물 재배의 자동화(노지 스마트팜)를 목표로, 무인·자동화 시범 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하고 있는 수확로봇이 토마토를 따고 있다. [사진 농촌진흥청]

농촌진흥청이 개발하고 있는 수확로봇이 토마토를 따고 있다. [사진 농촌진흥청]

 윤원습 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혁신정책관은 “청년농이 혁신밸리에서 20개월 교육을 받고 3년간 스마트팜을 임차해 직접 농사를 짓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모아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혁신 밸리를 거점으로 스마트팜을 확산하고 기존 농업인 대상으로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UAE 수출도 추진...규모의 경제 달성이 숙제

전 세계 스마트팜 시장은 지난해 161억 달러(19조8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시장 규모는 3000억원(2021년) 수준이다. 한국의 스마트농업 기술은 최고 기술국인 유럽연합(EU) 대비 70% 정도로 평가된다.

세계적으로 환경 데이터에 생육 데이터까지 활용하는 2세대 스마트팜의 상용화를 위한 기술 개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3세대는 2세대에 로봇 기술이 추가된다. 농촌진흥청 등에선 3세대 스마트팜에서 활용되는 선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수확예측 로봇의 경우 작물의 색깔을 인식해 수확량을 예상한다. 과채류 수확 로봇도 개발 중이다. 스마트팜 자동화 기술을 개발하는 중소기업도 여럿이다.

수출에 나선 곳도 있다. 중동 지역에서 관심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했을 때 국내 스마트농업 기업 8개사가 현지 기업과 양해각서 3건을 체결했다. 딸기 수직농장(고층 건물을 농경지로 활용) 6곳을 짓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농촌진흥청장을 지낸 박현출 한국스마트팜산업협회장은 “스마트팜이 성공하려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농업인들 사이의 대규모 자본 투자에 부정적 인식이 많다. 모두 윈윈하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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