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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양적완화가 낳은 건 ‘거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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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21면

금리의 역습

금리의 역습

금리의 역습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위즈덤하우스

약 3년 전, 금융시장 투자자들에게 혹독한 재앙의 시기가 닥쳤다. 코로나19의 충격이 전 세계를 덮친 2020년 3월이다. 글로벌 주식시장이 한꺼번에 폭락했다. 그 전에 2만7000선에서 움직이던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순식간에 1만8000선까지 추락했다. 국내 증시의 코스피는 11년 만에 1500선이 무너졌다.

역설적으로 이때는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축복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경쟁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섰다. ‘제로 금리’로도 모자라 중앙은행이 거의 무제한으로 채권을 사주는 방식(양적 완화)으로 돈을 풀었다. 각국 정부는 재난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뿌렸다.

2006~2014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버냉키. [AP=연합뉴스]

2006~2014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버냉키.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당시 긴급 조치를 ‘됭케르크 작전’에 비유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좁은 해안에 갇힌 연합군 병사 수십만 명을 극적으로 구해낸 작전이다. 위기에 처한 금융시장을 구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 책의 저자인 영국 출신 경제사학자의 생각은 파월과 다르다. 그는 초저금리와 양적 완화의 부작용으로 온갖 거품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자산가격 거품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주식과 채권, 부동산과 가계 자산, 암호화폐와 디지털아트, 사치재(명품)와 반려동물, 그리고 수집품까지 옮겨갔다”고 말한다.

도대체 금리가 뭐기에 온 세상을 거품으로 뒤덮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점토판에는 오늘날 차용증서와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중세 가톨릭 성직자들은 고리대금을 맹렬히 비난했지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지는 못했다. 이후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등장하고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고금리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깨져버렸다.

현 의장 파월. [로이터=연합뉴스]

현 의장 파월. [로이터=연합뉴스]

저자는 전작(『금융투기의 역사』)에서 다뤘던 금융 거품의 발생과 붕괴 과정도 다시 끄집어낸다. 18세기 초반 ‘미시시피 버블’의 붕괴는 프랑스 경제 전반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 그 배경에는 지폐를 마구 찍어내 국가 부채를 해결한다는 존 로의 야심찬 구상이 있었다. 로의 실험은 실패했지만 막대한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린다는 개념은 현대에도 낯설지 않다. 저자가 보기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그는 “돈을 찍어내는 데 골몰하고 금리를 조작하고 자산 가치 거품을 부채질하는 중앙은행 총재들 역시 로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설명하면서 로의 전기 작가 앙투안 머피를 인용한다. 머피는 “중앙은행 총재들이 지금 하는 일은 바로 로가 이미 권고했던 것들이다. 미시시피 체제는 실패했지만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마리오 드라기라는 후계자들을 남겼다”고 썼다. 버냉키와 옐런은 Fed 의장, 드라기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초저금리와 양적 완화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이 책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됐다. 원제(The Price of Time)를 우리말로 하면 ‘시간의 가격’이다. 저금리의 부작용이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나타나는 건 저자의 예상과 일치한다. 그러면 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는 건 정당할까. 최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고금리의 부작용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빚이 많은 가계나 기업은 고금리에 비명을 지른다. 고금리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돈의 흐름도 바꿔버렸다. 신흥국에서 빠진 돈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몰렸다. 일부 국가에선 외환위기의 조짐마저 보였다.

이론적으로 저축과 투자가 균형을 이루는 ‘자연 이자율’이란 개념이 있지만 현실에선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출간 시점의 제약은 있겠지만, 고금리의 부작용을 소홀하게 다룬 건 이 책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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