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성장, 미국은 성장 둔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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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분기 한국 경제가 역성장했다. 물가가 치솟고 금리도 가파르게 오르자 수출에 이어 민간 소비가 얼어붙으며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는 올 하반기 이후 성장률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 급랭에 수출 부진의 여파가 이어지며 올해 성장률은 정부가 전망한 1.6%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은 -0.4%다. 지난해 연간으로는 2.6% 성장했다. 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코로나19 발발 직후인 2020년 상반기(1분기 -1.3%, 2분기 -3.0%) 이후 10분기 만이다.

또 미국의 지난해 4분기 GDP는 전 분기 대비 2.9% 증가했다. 26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2022년 4분기 미 GDP 증가율 속보치가 2.9%(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전망치(2.6%)를 웃돌았지만, 3분기 성장률(3.2%)보다는 소폭 둔화했다. 미국 성장률은 속보치, 잠정치, 확정치 등 세 차례에 걸쳐 발표된다.

지난해 미국 성장률은 1분기(-1.6%)와 2분기(-0.6%) 모두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하반기 들어 플러스로 반등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미국의 연간 경제 성장률은 2.1%를 기록했다. 2021년(5.9%) 대비 3.8%포인트 둔화한 수치다.

한국의 4분기 역성장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되자 보복소비에 나섰던 소비자들이 고물가·고금리 충격에 다시 지갑을 닫으면서다. 부동산 경기가 급랭하며 이사 수요가 줄자 가전제품 등의 구매도 줄었고, 10~11월 기온이 예상보다 높았던 탓에 겨울 의류 소비도 줄었다. 그 결과 2분기(2.9%)와 3분기(1.7%)에 살아나는 듯했던 민간 소비는 다시 뒷걸음질(-0.4%)쳤다.

수출 부진도 성장률을 계속 갉아먹었다. 반도체와 화학제품 등을 중심으로 수출은 5.8% 감소했다.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 기여도는 -0.6%포인트를 기록했다. 원유 등 수입이 4.6% 줄었지만 글로벌 수요 둔화에 따라 반도체 등 주요 품목 수출이 5.8%나 감소한 탓이다.

설비투자도 2.3% 늘어나는 데 그쳐 3분기(7.9%) 대비 증가 폭이 크게 감소했다. 그나마 늘어난 재정지출이 추가 하락을 막았다. 지난해 4분기 정부 소비는 물건비, 건강보험급여비 지출을 중심으로 3.2% 증가했다. 3분기(0.1%) 대비 증가 폭이 늘면서 성장에 0.6%포인트 기여했다.

GDP 감소에도 국민의 주머니 사정을 나타내는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0.1% 증가했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 안 살아나…올 1.6% 성장도 버거울 전망 

유가 하락에 교역 조건이 3분기 만에 개선된 영향이다. 하지만 지난해 연간으로 보면 실질 GDI는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실질 GDI는 2019년 0.1% 감소한 뒤 2020년(0%) 제자리걸음을 했고, 2021년에는 3.1% 증가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올해 성장 전망도 안갯속이다. 황상필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지금 상황으론 1분기 성장률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거리두기 완화로 펜트업(pent-up·수요 분출) 소비가 얼마나 살아날지가 관건이고, 물가 상승과 금리 부담 그리고 수출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많이 좌우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상저하고(上低下高)’를 예상한다. 상반기에 최대한 성장률을 방어한 뒤 하반기 반등을 노리겠다는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지난해 4분기 GDP가 -0.4%의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대외의존도가 높은 주요 국가(평균 -1.1%)보다는 역성장 폭이 작은 수준”이라며 “올해 1분기의 경우 기저효과, 중국 경제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등에 힘입어 플러스(+) 성장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민간 연구기관이나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에선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금융센터가 집계한 이달 초 기준 주요 투자은행 9곳의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1%에 그치고 있다. 정부 전망치인 1.6%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당장 미국의 4분기 성장률 둔화로 볼 때 낙관론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4분기 성장률 둔화는 지난해 미국 주택경기 하락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베로니카 클라크와 앤드루 홀렌호스트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투자 감소가 미국의 4분기 GDP에 상당히 부담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미국 실물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가 둔화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소매판매(소비)는 지난해 12월 전월 대비 1.1% 감소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는 한국 경제에도 불확실성을 더할 전망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만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린다면 세계경제가 침체까진 아니더라도 성장이 많이 둔화할 테고, 한국 수출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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