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로라 향연, 밤하늘이 폭죽처럼 터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현지시각 1월 12일 오후 11시, 화려한 오로라가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빌리지 하늘을 물들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밤 약 4시간 동안 오로라의 춤사위가 멈추지 않았다.

현지시각 1월 12일 오후 11시, 화려한 오로라가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빌리지 하늘을 물들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밤 약 4시간 동안 오로라의 춤사위가 멈추지 않았다.

해외여행이 대수롭지 않은 시절이 돌아왔다. 가까운 여행지 말고 마음 깊이 담아둔 ‘버킷리스트’ 여행을 감행해도 좋을 때다. 이를테면 ‘오로라 관광’ 말이다. 이달 중순 오로라 관광의 성지 캐나다 ‘옐로나이프’를 다녀왔다. 전 세계 스키어의 로망 ‘휘슬러’도 들렀다. 기대했던 대로 폭죽 터지는 것 같은 초록빛 오로라를 봤고, 차원이 다른 설질을 온몸으로 느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에 따르면 2025년은 11년 주기로 반복되는 태양 활동 극대기의 해다. 올해부터 극대기에 준하는 태양 활동이 예상된다. 센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오로라 빌리지서 원주민과 문화 체험

눈 뒤집어쓴 가문비나무 뒤편으로 오로라가 아른거리는 모습.

눈 뒤집어쓴 가문비나무 뒤편으로 오로라가 아른거리는 모습.

오후 8시 30분. 밴쿠버 공항을 출발한 에어캐나다 76인승 소형기가 옐로나이프 공항에 착륙했다. 한국의 면 소재지 버스터미널만 한 공항 대합실, 박제된 북극곰을 보니 북극권(66도) 인근 도시(옐로나이프 62도)에 도착한 게 실감 났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방한복으로 갈아입고 ‘오로라 빌리지’로 향했다. 오로라 빌리지는 오로라를 잘 보기 위해 빛 공해가 없는 도시 외곽 숲속에 조성한 관광지다. 목적지에 접근하던 중 버스 안에서 온갖 언어로 탄성이 터졌다. ‘엄마야!’ ‘스고이!’ ‘어메이징!’

아니 벌써? 오로라가 커튼처럼 물결치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차창이 TV 화면이 된 것 같았다. 옐로나이프에서 사흘 머물면 오로라 볼 확률이 97%라는데, 첫날 그것도 오로라 빌리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장관을 마주했다. 가이드 다카야 겐조도 “2022년 성탄절 이후 거의 3주 만에 강렬한 오로라가 나타났다”며 흥분해서 말했다. 겐조는 “기후 위기 탓인지 옐로나이프도 이례적으로 따뜻하고 흐린 날이 이어졌었다”고 덧붙였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모두 하늘을 올려보거나 삼각대에 카메라를 걸고 촬영하느라 바빴다. 별이 총총히 박힌 맑은 밤, 북서쪽 하늘에서 오로라가 하늘을 수놓았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다가 파도처럼 일렁였고, 이따금 폭죽처럼 터지기도 했다. 지평선 너머 어딘가 오로라 공장이라도 있는 걸까. 오로라 빌리지를 떠난 이튿날 오전 2시까지 오로라의 춤사위는 멈추지 않았다. 과연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인정한 오로라 명소다웠다.

오로라빌리지에서는 원주민 전통문화도 배운다.

오로라빌리지에서는 원주민 전통문화도 배운다.

오로라 빌리지에서 내내 오로라만 보는 건 아니다. 텐트에서 ‘불멍’도 즐기고, 라면이나 핫초코도 먹는다. 원주민으로부터 오로라 전설도 듣고 전통문화를 배우기도 한다. 캐나다 원주민인 데네족 출신 아빈 랜드리는 “우리는 오로라가 먼저 떠난 가족과 친구의 영혼이 찾아온 것이라고 믿는다”며 “오로라를 만나는 순간 ‘감사하다’고 말하고 소원을 비는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사향소·무스 등 동물 전시 박물관 눈길

오로라는 태양풍과 지구 자기장이 만나 생기는 기상 현상이다. 극지방에서 주로 관찰돼 ‘북극광’이라고도 한다. 오로라가 보이는 지역에선 태양 활동 주기를 계산해 ‘오로라 예보’를 낸다. 하나 오로라 투어에서 태양 활동 주기보다 더 중요한 건 날씨다. 대기가 깨끗해야 잘 보인다. 오로라는 지상 90~300㎞ 높이에서 형성된다. 구름이 지상 2~13㎞ 사이에 분포하니까, 아무리 센 오로라가 만들어져도 구름이 끼면 관광객 입장에서 ‘꽝’이다. 하여 ‘오로라는 무조건 추워야 잘 보인다’는 말이 통한다. 오로라 관측을 성공한 1월 12일 밤 기온은 영하 24도, 체감 기온은 영하 31도였다.

개썰매는 옐로나이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겨울 놀이다.

개썰매는 옐로나이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겨울 놀이다.

오로라 관광을 하면 밤낮이 바뀐다. 오전 2시까지 오로라를 보고 숙소로 돌아와 빨리 잠들어도 오전 3시다. 7시간 잔다면 오전 10시다. 그래도 대낮처럼 밝지는 않다. 그때야 해가 떠 오후 4시쯤 진다. 해가 6시간만 얼굴을 드러내서인지 옐로나이프에선 낮이 더욱 각별하다.

설피를 신고 눈밭을 걷는 ‘스노슈잉’. 길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벌러덩 누웠다.

설피를 신고 눈밭을 걷는 ‘스노슈잉’. 길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벌러덩 누웠다.

밤에만 찾던 오로라 빌리지를 한낮에 가봤다. 알래스칸 허스키 12마리가 이끄는 썰매를 타고 꽁꽁 언 호수와 숲길을 질주했다. 순록 힘줄을 엮어서 만든 설피를 신고 가문비나무 우거진 숲을 걸은 뒤 모닥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다. 겨울동화에 빠진 기분이었다.

NWT양조장에서 맛본 바이슨 샌드위치와 감자요리 ‘푸틴’

NWT양조장에서 맛본 바이슨 샌드위치와 감자요리 ‘푸틴’

옐로나이프는 한국 면적의 13배에 달하는 ‘노스웨스트 준주’의 주도이지만, 인구는 1만9569명에 불과하다. 다이아몬드 채굴이 주산업인 따분한 동네 같아도 소소한 매력이 많다. 북극곰 가죽을 회의장 한가운데 깔아둔 주 의사당, 사향소·무스 같은 동물을 전시한 박물관이 필수 방문 코스다. 적은 인구에 비해 예술가가 많아 개인 갤러리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옐로나이프 대표 맛집 ‘불록스 비스트로’에서 먹은 피시앤칩스, NWT양조장에서 맥주에 곁들인 바이슨(아메리카들소) 샌드위치도 잊을 수 없다.

휘슬러 스키장, 최장 트레일은 11㎞

블랙콤 산에서 트레일을 질주하는 사람들.

블랙콤 산에서 트레일을 질주하는 사람들.

오로라 투어를 마치고 국내선을 타고 휘슬러 스키장으로 건너갔다. 2010년 밴쿠버 겨울 올림픽 때 주요 설상 종목이 열렸던 겨울 스포츠의 천국이다.  정확한 이름은 ‘휘슬러 블랙콤’이다. 휘슬러 산(2181m)과 블랙콤 산(2284m) 사면에 스키장이 있다. 스키를 탈 수 있는 산 면적은 33㎢, 스키 코스가 200개가 넘어 북미 최대 규모다. 가장 긴 트레일은 11㎞나 된다. 휘슬러에서 미국 콜로라도나 캘리포니아에서 온 여행객을 많이 봤다. “그 동네에도 좋은 스키장 많지 않냐” 물으면 같은 답이 돌아왔다. “휘슬러가 진짜 월드 클래스지.”

휘슬러와 블랙콤 정상부를 연결하는 픽투픽 곤돌라.

휘슬러와 블랙콤 정상부를 연결하는 픽투픽 곤돌라.

이토록 넓은 스키장을 며칠 만에 다 경험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여 풍광을 만끽하며 ‘월드 클래스’ 설질을 느끼는 데 집중했다. 휘슬러에서 몸을 풀고 ‘픽 투 픽 곤돌라’를 타고 블랙콤으로 건너갔다.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다시 리프트를 해발 2137m까지 올라갔다. 활강하며 마주한 풍광은 황홀했다. 수목한계선 위쪽 정상부는 탁 트인 풍광이 일품이었다. 산 중턱에서는 눈 뒤집어쓴 가문비나무 사이를 휘젓는 ‘트리 런(tree run)’도 만끽했다. 18일에는 신설 20㎝가 쌓여 설탕처럼 곱고 건조한 ‘파우더 스노’를 맛봤다. 구름 위를 미끄러지는 듯했다.

휘슬러에서 미식 투어를 즐기는 관광객.

휘슬러에서 미식 투어를 즐기는 관광객.

마지막 리프트 탑승 시간은 오후 3시. 해가 일찍 져 스키장도 빨리 닫는다. 식도락뿐 아니라 스파, 미술 투어까지 즐길 수 있어서 긴 밤이 지루하지 않다. 16일 저녁 ‘테이스팅 투어’에 참가했다. 5000개 와인을 보유한 ‘베어풋 비스트로’에서 샴페인과 생굴, 크로켓을 맛봤고 25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안 식당 ‘콰트로’에서는 야생 버섯 파스타를 먹었다. 3시간 30분간 5개 식당에서 호사스러운 미각 경험을 즐겼다.

스키를 즐긴 뒤 몸을 눅이기 좋은 델타 호텔 노천탕.

스키를 즐긴 뒤 몸을 눅이기 좋은 델타 호텔 노천탕.

스키 타며 뭉친 근육은 스파로 풀어줬다. 호텔에 딸린 풀장이나 사우나도 좋지만 ‘스칸디나브 스파’를 추천한다. 한나절 머물러도 될 만한 북유럽 분위기의 스파 시설이다. 휘슬러에는 멋진 미술관, 박물관도 많다. ‘오데인 아트 뮤지엄’은 건축상 6개를 받았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여행정보=캐나다는 코로나 관련해 어떤 증명도 요구하지 않는다. 전자여행허가(eTA)만 미리 받으면 된다. 7캐나다달러. 옐로나이프와 휘슬러를 모두 여행하려면 에어캐나다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수하물 자동 환승 서비스를 제공해 최종 도착지에서 짐을 찾으면 된다. 밴쿠버로 갈 때 9시간 40분, 인천으로 올 때 11~12시간 걸린다. 밴쿠버~옐로나이프 국내선은 약 2시간 30분 소요. 휘슬러는 밴쿠버 공항에서 차로 2시간 거리다. 오로라 빌리지에서 재킷·바지·부츠는 빌려주지만, 모자·핫팩 등은 챙겨가야 한다. 여행사 ‘헬로캐나다’가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과 휘슬러 스키 투어를 결합한 상품을 판다. 자세한 정보는 캐나다관광청 홈페이지 참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