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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원권 있으면 '세뱃돈' 딱인데..." 한은이 밝힌 '발행의 조건'

중앙일보

입력

“1, 3, 5, 10 이렇게 올라가는 한국인 특유의 감각을 생각해보면, 3만원권 지폐는 필시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중략)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만원을 주긴 뭣하고, 몇장을 세어서 주는 것도 좀스러워 보일까 봐 호기롭게 오만원권을 쥐여 주고는 뒤돌아 후회로 몸부림쳤던 수많은 이들이, 3만원권의 등장을 열렬히 환영하지 않을지.”(가수 이적 인스타그램)

물가는 치솟고 돈 나갈 곳은 많은데 세뱃돈까지 부담되는 설이다. 오랜만에 모인 조카나 손주에게 오만원짜리 몇장 씩 나눠주고 나면 십수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지출은 순식간이다. ‘1만원권보다는 크고 5만원권보다는 작은 지폐가 있다면 마음이 좀 편해지겠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왜 ‘3만원권’은 없을까?

16일 전북 전주시 양우신협 본점에서 직원이 설 세뱃돈 신권 교환에 사용될 지폐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16일 전북 전주시 양우신협 본점에서 직원이 설 세뱃돈 신권 교환에 사용될 지폐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5만원권은 한국 사회에서 각종 경조사비의 ‘기본 단위’로 자리 잡았다. 월급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서 결혼식 같은 모임은 부쩍 늘며 5만원권을 꺼내 들 일도 많아지고 있다. 명절 용돈 지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인크루트가 8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명절 비용 지출에 대해 ‘부담된다’(47%)고 했다. 이번 설에 용돈으로 지출할 것으로 예상한 금액은 평균 38만원에 달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고물가로 얇아진 지갑에서 거침없이 나가는 용돈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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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5만원권보다 작은 액수의 지폐가 생기면 이런 지출 부담이 줄어들 수 있겠지만, 현재 한국은행은 3만원권을 발행할 계획이 없다. 한은은 “3만원권을 새로 만들려면 발행했을 때 들어가는 비용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며 “지금으로써는 발행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새 화폐의 발행은 국내 거의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려할 것이 무수히 많다. 과거 5만원권을 새로 만들 때도 2007년 고액권 발행 계획을 공식 발표한 이후 2년이 지난 2009년에야 발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3만원권을 새로 만든다면 전국에 깔린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설비를 바꾸는 등의 단순한 비용부터, 새 화폐 사용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혼란, 도안 모델은 누구로 할 건지 토론하는 시간 등의 사회적 비용까지 많은 계산이 필요하다. 장석환 한은 과장은 “3만원권을 발행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장 과장은 무엇보다 “국민 대부분이 3만원권을 바라는 것으로 조사된다면 발행을 검토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사용과 비대면 상거래의 확대로 지폐의 사용량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새 지폐의 등장을 어렵게 한다. 한은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현금 지출액은 51만원으로 2018년(64만원)보다 25.4%(13만원) 감소했다.

경조금을 낼 때는 대부분 5만원권(81.1%)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돈 등 사적 이전지출에서는 1만원권(60.9%)을 쓰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아직은 용돈을 줄 때 1만원권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그나마 안심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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