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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10년만에 부활한 '반값 아파트'…시세보다 5억 싼데 깡통 로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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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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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10년 만의 토지임대부 아파트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서울 강남 생활권에 분양가가 3억 원대인 59㎡(이하 전용면적, 26평형) 아파트가 나온다. 주변 시세보다 5억원가량 저렴하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분양하는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지구 3단지다. 정부의 공공분양 50만가구 공급 계획에 따라 다음 달 사전청약하는 물량이다. 59㎡ 500가구다. 분양가가 3억5537만5000원이다.

고덕강일서 59㎡형 3억원대 공급 #분양가 높고 토지임대료도 부담 #전매 금지에 환매가 제약도 단점 #시세차익 없으면 실패 확률 높아

2010년대 초반 이명박 정부 때 조성한 서울 강남지구. 일반 아파트 분양가의 60%선인 2억2000만원에 공급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현재 13억원 정도를 호가한다. 사진 한국토지주택공사

2010년대 초반 이명박 정부 때 조성한 서울 강남지구. 일반 아파트 분양가의 60%선인 2억2000만원에 공급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현재 13억원 정도를 호가한다. 사진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와 KB국민은행의 시세 정보를 보면 같은 지구 내 같은 크기가 8억5000만 원선이다. 이 단지는 10년 만에 다시 나오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다. 토지는 SH가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것이다. 땅값이 빠져 분양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반값 아파트'로 불렸다. 실제로 앞서 나온 단지가 ’로또’였다.

고덕강일 3단지를 시작으로 현 정부에서 잇따라 나올 예정인 토지임대부도 이명박 정부 때 선보인 아파트처럼 로또가 될까. SH는 앞으로 공공분양 물량을 토지임대부 위주로 공급할 방침이다. 올해 추가로 사전청약할 마곡 등 1400가구 대부분 토지임대부로 계획돼 있다.

강남 민간 아파트보다 비싼 건축비

토지임대부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우여곡절 끝에 영입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출신의 김헌동 SH 사장이 추진해온 야심작이다. 그러나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과거와 달리 상당한 시세차익은커녕 남는 게 없는 ‘깡통 로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세보다 훨씬 싼 데도 고분양가 논란에 휘말렸다. 분양가가 3.3㎡당 1366만원이다. 고덕강일이 신도시처럼 공공이 개발한 공공택지여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한 가격이다. 토지 지분이 없어서 정부가 정한 기본형 건축비를 기준으로 매겨진 건축비다.

앞서 나온 공공분양 건축비보다 훨씬 비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해 12월 분양한 성남시 복정1지구가 3.3㎡당 900만원이었다. 앞서 SH가 2년 전 같은 고덕강일과 송파구 위례신도시에서 분양한 공공분양 건축비가 3.3㎡당 800만원 이하였다. 민간 아파트 상한제 가격도 이 단지보다 낮다. 분양 중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올림픽파크포레온)의 분양가상한제 건축비가 3.3㎡당 1100만원대다. 2021년 분양한 강남 역대 최고 분양가였던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건축비가 3.3㎡당 1000만원 정도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SH는 건축비 상승 이유로 고급화를 들었다. 김헌동 사장은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에서 고덕강일 3단지의 품질에 대해 국내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대명사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SH 관계자는 “어느 단지든 똑같이 적용되는 기본형 건축비가 동일하지만 품질을 높일 계획이어서 가산비용이 많다”고 말했다. 기본형 건축비는 지난해 9월 기준으로 3.3㎡당 730만원선이다. 가산비용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짓거나 홈네트워크 등 인텔리전트 설비 등을 설치하는 데 추가로 드는 금액이다.

그렇더라도 가산비용이 기본형 건축비에 맞먹을 정도로 늘어날 수 없다. SH 관계자는 “2026년 8월 준공 무렵 실시 예정인 본청약 때의 실제 분양가와 차이를 줄이기 위해 그때까지 예상 건축비 상승분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지난 3년 반 동안 기본형 건축비 상승률은 14%였다. 사전청약 분양가는 본청약 때 최종 확정된다.

10년만에 토지임대부를 다시 분양하는 고덕강일지구 조감도(왼쪽)와 전용 59㎡ 평면도.

10년만에 토지임대부를 다시 분양하는 고덕강일지구 조감도(왼쪽)와 전용 59㎡ 평면도.

구체적인 품질은 본청약 때 공개될 예정인데, 얼마나 만족스러울지 두고 볼 일이다. 입주자모집공고에 공개된 조감도와 평면도는 기존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예금 이자 정도만 받고 환매해야

10년 전 이명박 정부의 토지임대부는 일반 아파트를 능가하는 집값 상승률을 보였다. 대지지분이 없어 일반 아파트보다 몸값이 좀 낮게 평가되더라도 분양가가 워낙 쌌기 때문에 더 많이 올랐다.

2011~2012년 서울 강남·서초지구에 분양한 토지임대부 분양가와 일반 아파트 분양가가 40% 정도 벌어졌는데, 현재 시세는 10~20% 차이로 좁혀졌다. 2011년 2억원에 분양한 서초지구 토지임대부의 지금 시세가 14억원 정도로 상승률이 600%다. 2010년 3억7000만원에 분양한 일반 아파트가 현재 16억원 선으로 상승률이 330%인 것과 비교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고덕강일 3단지는 다르다. 현행 토지임대부 관련 법령에 따르면 전매할 수 없다.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고 LH에 매각(환매)해야 한다. 과거 토지임대부는 5년 전매제한이 끝나면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었다.

LH의 환매 가격이 사실상 분양가 수준이다. 분양가에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을 적용한 이자를 합친 금액 정도다.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고덕강일 3단지 환매로 손에 쥘 수 있는 차익이 없는 셈이다. 차라리 분양대금을 은행에 묻어두는 게 낫다.

숨은 비용으로 토지 임대료 부담도 만만찮다. 아파트에 딸린 대지 지분에 대해 임대료를 내야 한다. 모집공고에서 밝힌 추정 임대료가 월 40만1000원이다. 택지를 만드는 데 들어간 조성원가에 은행 3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을 적용한 돈이다. 본청약 때 임대료가 정해지는데, 지금보다 금리가 더 올라가면 임대료가 상승하게 된다.

금리 외 토지임대료를 확 높일 다른 변수가 있다. 정부가 토지임대료 산정 기준을 조성원가에서 감정평가금액 이하에서 자치단체가 정하는 것으로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토지임대료를 조성원가로 제한함에 따라 사업성 확보가 곤란하다”며 임대료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감정평가금액은 시세에 준하는 가격이다. 고덕강일의 경우 감정평가금액이 조성원가(3.3㎡당 900만원)의 2배가 넘는다. 2020년 6월 공공분양 단지의 감정가가 3.3㎡당 1800만원 선이었다. 그동안의 땅값 상승률을 고려하면 현재는 훨씬 더 올랐을 것이다. 40만원인 토지임대료가 80만원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덕강일 3단지 모집공고도 “토지임대료가 본청약 모집공고 시 변경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비싼 토지임대료를 월세처럼 내며 살다가 분양가와 별 차이 없는 돈만 받고 나온다면 수요자 입장에선 임대주택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증금 3억5000만원, 월세 40만원 임대주택인 셈이다. 이 정도 임대료로 강일지구에서 집을 더 키워 84㎡에도 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받은 사람이 남는 게 없다면 분양받을 이유가 없어 토지임대부가 성공하기 어렵다”며 “청약 기회와 청약통장만 아깝게 날리게 하지 말고 아예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3년 반 뒤 본청약 때 어떻게 될지...

토지임대부가 성공하려면 어느 정도 시세차익 보장이 필요하다. 과거 토지임대부처럼 시세차익의 70%를 주는 이익공유형 환매 가격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토지임대부 분양이 본격화하면서 현재 국회에 토지임대부 제도를 손보려는 주택법 개정안이 3건 올라와 있다. 환매 기관을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SH 등 공공주택사업자로 확대하고, 이름을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에서 건물분양주택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10년 이하 범위에서 전매를 제한하고, 전매제한이 풀린 뒤에는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한다. 현재 월별로 내는 토지임대료를 선납할 수도 있다.

서둘러 토지임대부 제도를 보완하지 않으면 과거처럼 주택 수요자만 혼란스럽게 하는 실험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국회의 관련 법안 논의에 앞서 정부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주택공급 확대에 열을 올리는 정부가 토지임대부 분양과 관련해서는 서울시에 맡겨두고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새다. 공급은 서울시가 하더라도 제도는 국토부 소관이다. 전매제한·환매가격·토지임대료 등 분양조건이 3년 반 뒤 본청약 때 어떻게 확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청약 대기자는 난감하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아파트는 건물과 토지(대지지분)로 이뤄진 집합건물인데, 토지를 임대하는 조건으로 건물만 분양하는 주택. 수요자는 분양가로 건축비에 해당하는 건물 가격만 부담하기 때문에 저렴해 역대 정부에서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추진한 단골 메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경기도 군포시 부곡지구 시범사업에 이어 2011~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서울 강남·서초지구에 2개 단지가 분양됐으나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사업성도 떨어져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