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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잠깐 작전타임 갖자는 중국의 제안, 미국이 받을까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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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2023년을 미·중 갈등의 ‘쉬어가는 한 해’로 삼자는 신호를 미국에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그만큼 지난 3년간 ‘코로나 쇄국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내상(內傷)이 생각보다 컸다는 의미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1월 12일 진행한 '인도-태평양 예측 2023'(Indo-Pacific Forecast 2023) 설문 조사에서도 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맞닥뜨릴 가장 큰 도전으로 ‘경제’(62%)를 지목했다.

중국 정부에 조언하는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미·중 관계에 관한 최근 강연에서 “정상적인 경제 질서를 회복해야만 중국이 미국과 경쟁할 수 있다” (恢復正常經濟秩序中國才能與美抗衡)라고 했다(12월 1일). 경제를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경제가 올해 시진핑이 총력전을 펼칠 주안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지난해 12월 열린 공산당 지도부의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확인됐다. 시진핑은 “(경제)발전은 당의 첫째 의무이고, 집권당으로서 우리는 경제사업에 대한 지도를 확실히 강화하고 경제업무를 빈틈없이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 2022.12.20.).

지금까지 시진핑 체제에서 규제와 ‘단속의 대상’이었던 빅테크 민간기업과 부동산이 이제부터는 ‘적극적 지원의 대상’으로 탈바꿈하였다. 마치 몸의 혈액순환을 촉진하듯, 중국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내수를 다시 진작시킬 유동성을 시장에 더 많이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심지어 “나는 일관되게 민간기업을 지원해 왔다”(我是一貫支持民營企業的)라고도 말했다.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이념에 ‘진심’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발언치고는 매우 이례적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이번처럼 공산당 지도부의 ‘드라마틱한 반전’은 처음이라는 관전평도 나왔다. 누가 봐도 올해는 중국이 내수 성장 중심의 경제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신호를 확실히 주려는 것이다.

경제에 집중하려는 중국, 안정적 미·중 관계 원해

중국이 경제에 집중하려면 안정적인 대외 환경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경쟁 관계에 있는 미국과의 충돌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시진핑 체제에서 공세적 외교를 펼치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던 ‘전랑외교’ 모습으로는 안될 것이다.

중국 전랑외교의 상징적 인물인 친강(秦剛) 주미 중국대사가 우선 나섰다. 워싱턴 조야는 대미 강경파인 그가 지난해 12월 말 중국 차기 외교부 수장으로 임명되자 적잖이 당혹해 하는 상황이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더 공세적으로 나올 징조로 봤다. 그런 친강이 베이징으로 귀국하기 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더 나은 중미 관계를 위해 서로 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다음날 중국 관방 환구시보도 거들었다. 중국이 미·중 관계 개선 희망을 피력한 만큼 “미국도 미·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지고 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제공해야 한다”라는 사설을 내보냈다(1월 2일).

중국으로 귀국해 외교부장 업무를 시작한 친강은 워싱턴포스트지(紙)에 미국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담긴 칼럼을 기고했다(1월 4일). 미국에서의 여러 추억을 새록새록 반추한 후 그는 “나는 그것을 내 마음에 간직할 것이다”(I will hold them in my heart)라며 감성적 문구를 곳곳에 담았다. 그는 “미·중 관계의 문은 열려 있고, 닫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강의 칼럼은 워싱턴 조야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 이 사람이 과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독설 외교의 원조’라 불렸고, 전직 미국 고위 관료들과 화상회의 도중 미국을 두고 “제발 닥쳐”(Please shut up!)라고 했던 동일 인물인지 모르겠다고 미국 현지의 한 인사는 혀를 찼다.

미국에 대해 180도 ‘변검(變臉)’하는 친강의 모습은 그의 인간적 성정이라기보다는 그가 시 주석의 충복으로서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싶다.

최근 한국과 일본이 중국발 입국 규제를 강화하자 중국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비자 발급 중단으로 보복하고 있지만 미국과는 적극적으로 중단된 미국과의 항공편 운항 정상화에도 속도를 내고 일관성을 보인다.

싸우다 잠시 ‘작전타임’ 갖자는 중국의 제안, 미국이 받아들일까?  

얼핏 보면 미·중 갈등이 극한 충돌로 가는 것을 막을 ‘가드레일’을 줄곧 강조한 미국의 입장에서도 중국이 제안하는 관계 ‘안정화’에 대해서는 교집합을 갖는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다음과 같은 쌍방간 도전적 요인이 있다.

첫째, 우선 미국도 알고 있다. 중국이 제안하는 것이 결국 ‘시간 벌기 전략’이라는 것을. 코로나 확진 폭증과 백지 시위, 그리고 경제 침체로 국내적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을 오히려 ‘이참에 제대로 손봐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둘째, 미국 측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국이 말뿐만 아니라 행동적으로도 미국이 중국에 표명한 일련의 우려를 중국이 수용했다는 지표가 부재하다. 예를 들어 중국의 강압적 기술 이전 강요 및 탈취, 불공정한 경제적 행태 및 보복, 홍콩 및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증강 등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개선 없이 중국이 말로만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자는 것에 대해 중국을 표리부동하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 미국 역시 말로는 중국과의 경쟁에 있어 ‘가드레일’을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은 지금까지 해왔던 대중 강경 모드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고, 일본·한국·호주 등 동맹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며, 국가안보에 민감한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 발전을 제한하기 위한 동맹과 연합전선을 계속 펼칠 것이다. 그리고 또 봄이 되면 미국 의회 고위급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할 것이다. 특히 대중 강경파 케빈 매카시(Kevin McCarthy) 미국 신임 하원의장은 이전부터 자신이 하원의장이 되면 대만을 방문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넷째, 일각에서는 미국도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점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들은 더 많은 표심을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기가 상대 후보보다 중국에 대해서 더 강경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미·중 갈등은 중국의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기존 갈등 영역인 군사력 증강, 첨단기술 확보, 일반에 그 실체가 공개되지 않는 매우 치열한 사이버 해킹전, 에너지 및 식량원 확보, 그리고 동맹 견제 등에서 근본적 변화가 없다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상당한 불확실성을 갖고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성현 조지 HW부시 미중 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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