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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낮은 고도에서 천천히, 애틋하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1호 31면

신병문의 사진 ‘하늘에서 본 우리 땅의 새로운 발견, 갯벌_고창 2012’.

신병문의 사진 ‘하늘에서 본 우리 땅의 새로운 발견, 갯벌_고창 2012’.

그는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뽈뽈뽈 고둥이 지나간 흔적처럼, 사람이 갯벌에 앉은걸음으로 길을 내는 이 노동의 순간을. 밀물에 지워졌다 썰물에 그려지기를 반복하는 무상한 무늬를. 사진가의 눈에 저 뻘 위의 삶은, 저 삶을 품은 이 땅의 풍경은 또 얼마나 애틋했을까.

‘하늘에서 본 우리 땅의 새로운 발견, 갯벌_고창 2012’는 사진가 신병문이 전북 고창의 갯벌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이다. 공중에서 찍은 사진이라 하면 흔히 헬기를 타고 촬영하는 항공사진과 지상에서 무인비행기계를 원격 조정하는 드론사진을 떠올리게 되는데, 신병문의 ‘방식’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하늘에서 모터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촬영하는 것이다. 땅과 가까워 추상적이지 않고 확인 가능한 풍경, 작가의 유정한 시선이 스며 사람이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가 살갑게 드러나는 풍경, 신병문이 펼쳐 보여준 항공사진이다.

신병문이 카메라를 들고 모터를 단 패러글라이더에 처음 몸을 실은 것은 2011년. 낮은 고도에서 천천히, 세세하게 바라보는 동안, 한국 인문지리의 풍경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패러글라이더로 날며, 우리나라 전역을 사진으로 기록하겠다는 다짐을 그때 했다. 비 안 오고 바람 거세지 않은 날이면 패러글라이더에 몸을 실었던 세월이 10년. 700회가 넘는 비행을 했으니, 생의 꼬박 2년은 하늘에 떠 있었다.

‘우리나라 사진가로서는 드물게 항공촬영 방식을 고수하며 국토의 아름다움과 지리적 특성,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남다른 관점에서 보여줌으로써 생태와 환경으로까지 확장된 시각을 갖게 해준’ 그와 그의 작업은, 2019년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수여하는 사진상인 ‘온빛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우리 땅 구석구석을 사진에 담느라 지상 어디에도 정주처라 할 자신의 집이 없었던 신병문. 그러나 지난 10년여 동안 우리 땅 상공 몇 백 미터 지점은 오직 그만이 오래 머무는 그의 거처였다.

그런 그가 지난달 패러글라이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갯벌 위에 그려진 저 ‘앉은걸음’의 흔적처럼 그가 공중에 무수히 냈을 노동과 작업의 궤적들이 다만 그의 사진 속에 남았다. 기억할 것을 기어이 기억하고야 마는 사진의 방식으로 그를 애도한다.

박미경 갤러리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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