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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프랑스 축구, 블랙핑크의 공통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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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스포츠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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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블뢰(Les Bleus)’ 는 역시 멋졌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했던 프랑스 축구대표팀 이야기다. 킬리안 음바페의 돌파, 앙투안 그리스만의 드리블, 오렐리앵 추아메니의 패스는 말 그대로 ‘아트 사커’였다. 화려한 개인기는 기본, 세밀한 패스에 탄탄한 조직력까지 더하니 축구가 아름답다. 우승은 아르헨티나가 차지했지만, 승패를 떠나 프랑스 축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프랑스가 축구 강국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밑거름이 됐다.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이나 다름없다. 프랑스는 1988년 국립 축구연구소를 만들었다. 유소년 양성 기관이자 대표팀 훈련 장소인 클레르퐁텐이다. 축구 영재를 육성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종주국이라고 뽐내는 영국을 꺾기 위해서 클레르퐁텐을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다. 시설은 5성급 호텔급인데 분위기는 대학교 기숙사 같다. 축구 스타 티에리 앙리가 바로 클레르퐁텐 출신이다. 차세대 축구 황제로 떠오른 음바페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공을 찼다. 축구 영재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세월이 흐른 뒤 결실을 보았다. 앙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국 프랑스에 우승 트로피를 바쳤다. 음바페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골든부트(득점왕)를 차지했다.

피부색 따지지 않는 프랑스 대표팀
K팝 그룹도 외국인 적극적 영입
국적과 혈통 따지는 건 시대착오적
축구도 문화도 대세는 하이브리드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 축구대표팀. 아프리카계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 축구대표팀. 아프리카계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프랑스 대표팀엔 ‘순수’ 프랑스 국적 선수가 많지 않다. 카타르 월드컵 26명의 대표팀 엔트리 중 프랑스 단일 국적자는 8명뿐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복수 국적자다. 국적이 아닌 피부색으로 따져보면 이게 정말 프랑스 대표팀 맞나 싶다. 특히 선발 라인업엔 아프리카계 선수들이 주류를 이룬다. 공격수 그리스만과 골키퍼 위고 요리스를 빼면 모두 피부색이 검다. 프랑스 대표팀이 아니라 아프리카 올스타팀이라 부를 만하다. 공격수 음바페는 아버지가 카메룬, 어머니가 알제리 출신이다. 그래서 국적이 세 개인 3중 국적자다. 추아메니는 부모님이 모두 아프리카 카메룬 출신이다. 현역 선수뿐만 아니라 역대 프랑스 축구대표팀에도 흑인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 당장 프랑스의 축구 레전드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계다. 티에리 앙리도 이민 가정 출신이다.

백인 선수라고 해서 모두 프랑스 혈통인 것도 아니다. 그리즈만은 아버지가 독일계, 어머니는 포르투갈 출신이다. 골키퍼 요리스는 스페인계다. 프랑스와 스페인 이중국적이다. 이런 경우는 끝도 없다.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축구 스타 미셸 플라티니는 이탈리아 이민 가정 출신이었다. 이쯤 되면 국적과 혈통, 피부색을 구분하는 게 난센스요, 시대착오적이다. 그래선지 플라티니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에 인종이란 없다. 어설픈 백인들만 흑인을 차별한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축구대표팀 구성을 놓고 말이 많다. 그래도 프랑스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자유를 중시하는 분위기에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프랑스 특유의 톨레랑스 문화도 한몫했다. 관용과 아량, 포용을 뜻하는 단어가 바로 톨레랑스다. 국적과 피부색이 달라도, 때로는 종교가 달라도 보듬겠다는 것이다. 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패스, 창의적인 플레이로 골을 만들어내는 아트 사커는 바로 톨레랑스의 산물이다.

결국 대세는 하이브리드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요소를 둘 이상 뒤섞는다는 뜻이다. 하이브리드는 축구에만 적용되는 덕목이 아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하이브리드가 사회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내연 기관(석유)과 전기모터(배터리)를 적절하게 혼용한 결과 연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골프도 하이브리드 시대다. 아이언과 우드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클럽이 위력을 발휘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자신을 ‘코카블래시안’으로 칭한다.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의 혼혈이란 뜻이다.

이뿐인가. K팝 그룹 중엔 순혈주의를 버리고 외국인 멤버를 받아들인 팀이 한두곳이 아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블랙핑크가 대표적이다. 잘 알려진 대로 리사는 태국 출신, 로제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성장한 이중 국적자다. 굳이 프랑스 축구대표팀과 블랙핑크의 공통점을 꼽자면 하이브리드 팀을 만든 뒤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최고의 가치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하이퍼 커넥트 시대에는 결국 세계와 교류하면서 소통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축구 대표팀을 이끌 지도자가 외국인 감독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