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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으로 다른 말 하지 않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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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북한 무인기의 위험성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4월 한 예비역 장성을 만났을 때 들었던 가상 시나리오다.

‘동해안 해군 유류 기지에 돌연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처음엔 사고인지 피격인지 알 수 없었다. 군 당국의 조사 결과 북한 무인기의 자폭 공격이었다. 잔해도 발견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확정까지 며칠의 시간이 걸리며 대북 응징의 시간을 놓쳤다. 또 조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선 “북한 무인기 맞나. 믿을 수 없다”며 논란이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가해자인 북한은 적반하장으로 남조선의 전쟁 기도에 선제공격을 하겠다며 한반도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결론=남한은 두드려 맞고도 내부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고 오히려 북한이 협박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지 8개월 만에 서울 하늘이 뚫렸다. 국민은 어이가 없다.

민주당, 북 무인기 침투 질타하며
“안보는 장난 아니다” 연일 맹공
핵 위협은 무인기보다 훨씬 엄중
한·미 연합훈련에 딴지 안될 말

북한 조선중앙TV가 1일 공개한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북한은 2017년 화성-12형을 첫 시험 발사했는데 6년이 흐른 올해에는 이 미사일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가 1일 공개한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북한은 2017년 화성-12형을 첫 시험 발사했는데 6년이 흐른 올해에는 이 미사일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무인기가 활개 치는 사태를 막으려면 평소에 대비해야 한다. 예산 우선순위 범위에서 장비를 갖추고, 상시 훈련을 해야 한다. 물론 무인기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인기는 동체가 작은 데다 저고도로 날아다녀 레이더에 간헐적으로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무인기와 비슷하게 점으로 나타나는 새떼에 기총 사격을 하지 않으려면 직접 가서 눈으로 봐야 한다고 한다. 또 민가를 배경으로 기총 사격을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군의 해명은 여기까지다. 탐지와 격추가 어렵다고 군이 실패의 책임을 면제받을 권리는 없다. 전쟁이 벌어지면 패자에게 두번째 기회는 없다. 레이더에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전을 용서받지 못한다.

민주당은 정부와 군에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이런 대통령에게 국군 통수권을 계속 맡겨야 하는가” “정신줄을 놓은 정부, 안보가 장난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맞다. 민주당 비판대로 안보는 장난이 아니다. 정부와 군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평소 대비가 필요하다. 꼼꼼한 탐지 체계와 발견된 무인기에 대한 요격 체제를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도 비상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실시간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게 평시 훈련이다. 국가 안보건 개인 삶이건 같다. 평소에 준비 없이, 노력 없이, 땀을 흘리지 않고 살다가 상황이 닥쳤을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건 웃기는 사고방식이다. 나랏일이건 개인사에서건 공짜를 기대하고 살면 미래가 없다.

2015년 8월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문제 삼아 전쟁 협박을 했다. 이른바 ‘인민군 전선사령부’가 “전 전선에서 전면적 군사행동을 개시한다”고 위협했다. 당시 군은 일전불사를 각오했다. 전쟁에 대비해 전방 부대에서 후송 가능한 민간 병원들의 혈액 재고량까지 확인했다. 이런 물밑 대비가 없이는 싸울 생각을 말아야 한다.

대북 대비에서 가장 대규모이며 가장 직접적인 훈련은 한·미 연합훈련이다. 무인기 대비는 국지 타격 대처용이지만 연합훈련은 한반도에서 북한 도발로 벌어지는 전면전을 상정한 최상위 훈련이다. 평소 북한 무인기를 막기 위해 훈련하는 게 당연하다면 북한의 핵 공격과 지상군 남침, 특수부대 침투 같은 전면전에 대비한 훈련은 더욱 당연하다.

민주당은 이번에 무인기의 서울 침입을 맹비난하며 안보 무능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줘야 마땅하다. 무인기에 뚫린 대비 태세를 “안보 참사”로 질타하면서 “북핵 전면전 대비 연합훈련은 안 해도 된다”고 주장한다면 자기모순이다. 연합훈련을 유예하자며 소속 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행동이나,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연합훈련을 하지 말자는 무책임한 주장은 국민 앞에서 삼가야 한다. 이른바 진보 단체들이 미군 철수, 연합훈련 중단을 외칠 때도 민주당은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게 “안보는 장난이 아니다”며 맹공하던 태도와 결이 일치한다.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기하급수적 핵 전력 증강’을 선언했다. 지난 민주당 정부는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나들고, 도보다리를 함께 거니는 ‘감동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보여줬지만, 2023년 1월 1일 재확인한 건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일도’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무인기보다 백배 천배 위험한 북핵에 대해 최소한 무인기 대비에 준하는 안보 중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한 입으로 다른 말을 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