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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민호의 레저터치

10만원어치 지역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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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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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레저팀장

손민호 레저팀장

팔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여행기자로서 지방소멸이란 말을 실감한다. 시골 마을에 들어가면 이제 60대도 만나기 힘들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국내 소멸위험 지역은 113곳으로 전국 228개 기초단체의 절반(49.6%)에 육박한다.

조용했던 시골에 지난해 여름부터 미미하게나마 진동이 일어났다. 올 1월 1일 시행한 고향사랑기부제 때문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현 거주지가 아닌 지역에 돈을 기부하면,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고 지역은 답례품을 주는 제도다. 이름은 ‘고향사랑’이지만, 고향이 아니어도 된다. 주민등록상 거주지만 아니면 상관없다. 사람이 없어 소득도 없는 지방에 기부금 형태의 소득을 만들어줘 지방소멸을 막자는 게 취지다.

원조는 일본의 후루사토노제(故鄕納稅)다. 고향사랑기부제와 각론은 다르나 ‘고향납세’란 이름처럼 총론은 같다. 후루사토노제는 시행 첫해인 2008년 5만4000건 81억원의 실적을 올린 이후 가파르게 성장해 2021년엔 4447만3000건 8302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일본 지방소득의 약 40%를 후루사토노제가 담당한다는 보도도 있다. 일본의 성공 사례를 우리 형편에 맞게 변용한 게 고향사랑기부제다.

지난해 개발한 안동 관광 브랜드. 손민호 기자

지난해 개발한 안동 관광 브랜드. 손민호 기자

고향사랑기부제를 이해할 때 중요한 숫자가 두 개 있다. ‘10만’과 ‘3만’이다. 개인의 연간 기부 한도는 500만원이나 10만원 이하는 전액 세액공제 대상이다(10만원 이상은 16.5% 세액공제). 지역은 기부금의 30% 한도에서 답례품을 준다. 그러니까 10만원을 기부하면 100% 세금으로 돌려받고 3만원어치 선물도 받는다. 지방을 사랑하지 않아도 기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왕이면 10만원 꽉 채워서.

하여 답례품이 중요하다. 대개의 도시 직장인은 고향에 추억은 물론이고 애정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기부 지역을 선택할 때 답례품부터 따진다고 한다. 작년 하반기 자치단체마다 답례품 개발한다고 들썩거렸던 이유다. 행안부도 1일 오픈한 ‘고향사랑e음’ 홈페이지에서 전국의 답례품 목록을 나열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가격을 3만원에 맞춘 답례품이 쏟아져나왔다. 하나 2만7800원짜리 가시오가피, 3만800원짜리 게장, 5만4000원짜리 쌀도 있었다. 기부자 입장에서 이런 가격의 답례품은 난감하다. 가시오가피를 고르면 2200원 손해 보는 느낌이고, 게장을 먹으려면 전액 세액공제를 포기해야 한다. 기존 특산품을 진지한 고민 없이 답례품에 올린 사례로밖에 안 보인다.

고향사랑기부제 덕분에 지리멸렬했던 지역 특산품 시장에 활로가 생겼다. 지역도 새 제도에 맞춰 특산품 브랜드를 발굴하고 제품 패키지를 개선해야 한다. 나 같아도 예쁘고 알찬 특산품을 골라 지역 사랑을 실천하겠다. 이왕이면 10만원에 맞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