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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도 부자는 거뜬? 美고소득자 더 때리는 '리치세션' 실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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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뉴욕 맨해튼의 한 상점에서 사람들이 달러 현금을 세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뉴욕 맨해튼의 한 상점에서 사람들이 달러 현금을 세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불어닥치고 있다. 올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저소득층보다 오히려 고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큰 경제적 타격을 입을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이런 상황을 ‘리치세션(Richcession)’이라는 신조어로 규정했다. 부자를 뜻하는 리치(Rich)와 불황을 의미하는 리세션(Recession)을 조합했다. 고소득층이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불황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불황기에는 자산이 적고 직업 안정성이 낮은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큰 고통을 받고, 고소득층은 약간의 경제적 불편함을 겪는 수준에 그친다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져 부자들도 힘든 시기를 보낼 것이란 게 WSJ의 예측이다.

지난해 12월 30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주식시장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0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주식시장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러한 전망은 고소득층의 자산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미국 소득 상위 20%의 가계 순자산은 2021년 말과 비교해 7.1% 감소했다. 지난해 주식시장이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인 탓이 크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Fed가 올해에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식시장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3일 새해 처음으로 개장한 뉴욕증시에선 테슬라(-12.3%), 애플(-3.69%) 등이 폭락하면서 다우지수, 나스닥, S&P500 모두 하락 마감했다.

그렇다고 고소득층의 월급 주머니가 두둑해지지도 않았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미 소득 상위 25% 노동자의 지난 12개월간 평균 임금 상승률은 4.8%로 하위 25% 노동자 임금 상승률 7.4%에 못 미쳤다. 오히려 고소득 근로자들은 해고를 걱정하고 있다. 미국 산업계에 불어닥친 정리해고 바람 때문이다. 지난해 Fed의 금리인상 후폭풍으로 사정이 어려워진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들이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다. 페이스북의 모기업 메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인수한 트위터를 비롯해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까지 감원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WSJ는 “전문기술을 가진 고소득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새 직장을 찾는 게 어렵지 않겠지만, 다시 취직할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 새 일자리에서 이전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한 거리에 '직원구함' 안내 표지가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9월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한 거리에 '직원구함' 안내 표지가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저소득층은 고소득층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불황 고통이 덜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Fed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소득 기준 하위 20% 가구의 순자산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말보다 42% 늘어났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도 17%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받으며 재정적으로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들어 미국 내 노동시장의 구인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일자리를 잃을 걱정도 크지 않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11월 실업률은 3.7%로 2월 이후 10개월 연속 3%대를 유지했다. Fed는 3%대 실업률을 기록하면 완전 고용 상태로 본다. WSJ는 “불황이 닥쳐도 미국 고용시장엔 큰 타격이 없을 거라 보는 경제학자들이 많다”며 “저소득층이 종사하는 서비스업 등의 직업 안정성은 고소득층보다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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