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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세컨더리 보이콧 경고? 북 노동자가 만든 中제품 압류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이 북한 노동자가 만든 중국산 수입품들을 최근 미 전역의 항구에서 압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대북 제재 수단으로 중국산 물품을 압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이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인 인력 수출에 대한 감시망을 강화하면서 중국에 경고를 보내는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중국 의류·식품 기업 3곳이 북한 노동력으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 제품들이 이달 초 미 당국에 압류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북한 평양 의류 생산 공장인 평양 선교편직공장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모습으로 지난 2020년 3월 9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것이다. 뉴스1

중국 의류·식품 기업 3곳이 북한 노동력으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 제품들이 이달 초 미 당국에 압류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북한 평양 의류 생산 공장인 평양 선교편직공장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모습으로 지난 2020년 3월 9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것이다. 뉴스1

27일(현지시간)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북한 노동자가 생산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 중국산 제품들을 지난 5일부터 미국의 모든 무역항에서 압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압류 대상은 징더무역(Jingde Trading Ltd.), 릭신식품(Rixin Foods. Ltd.), 저장 선라이즈 의류그룹(Zhejiang Sunrise Garment Group Co. Ltd) 등 중국 업체 3곳이 미국으로 수출한 가공식품과 의류 등이다.

CBP는 “‘제재를 통한 적성국 대응법(CAATSA)’ 위반 혐의로 이들 업체를 조사한 결과 북한 노동력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국은 강제노동을 통한 북한의 외화벌이를 막기 위해 채굴ㆍ생산ㆍ제조 과정 중 일부라도 북한 노동력이 이용된 제품은 미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2017년 CAATSA를 제정했다. CBP는 이어 “중국 업체들이 제품 생산 과정에서 강제노동이 없었다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모든 물품을 압류했다”고 설명했다. 미 당국은 압류된 물품을 30일 정도 보관하는데, 이때까지 업체들이 소명 자료를 내지 않으면 모두 몰수 처리된다.

앤마리 하이스미스 CBP 무역 담당 부국장은 이번 조치와 관련해 “북한의 강제노동 체계는 국내외적으로 운영되면서 북한 정부의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원한다”며 “강제노동은 중대한 인권 침해로 우리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러한 제품이 미국에 유입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미국의소리(VOA)에 말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이전인 지난 2018년 여름 중국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시내에서 장을 본 후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이전인 지난 2018년 여름 중국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시내에서 장을 본 후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다만 CBP 측은 중국 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북한 노동력을 썼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북한서 만들어 중국 다시 보내"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외 노동자들을 대거 본국으로 소환하면서도 학생비자와 단기비자로 중국과 러시아에 체류 중이던 일부 북한 주민을 현지 공장에 취업시켰다.

또 다른 방식도 거론된다. 한 소식통은 “중국 업체가 원자재를 북한에 들여보내면 북한 내에서 가공한 완제품을 다시 중국으로 보내는 형태로 생산이 이뤄졌다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그간 미국이 대북제재와 관련해 중국 기업이나 개인을 직접 겨냥한 적은 드물다. 이 때문에 미국이 중국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대상국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ㆍ은행ㆍ개인 등에 대한 제재)’을 본격 가동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 18일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둔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고 이튿날 영상과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북한은 지난달 18일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둔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고 이튿날 영상과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앞서 지난 5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미ㆍ중 정상회담(지난달 14일) 이후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한 중국의 노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일원으로서 중국이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오히려 그 반대다”고 회의적으로 답변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제재 위반의 90% 이상이 중국인 데도 그간 미국은 중국의 기업과 개인을 겨냥한 제재 카드는 꺼내 들지 않았다”며 “이번 조치는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더 강하게 나가겠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이어 “중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완화한 만큼 북ㆍ중 국경이 다시 열리면 북한 경제가 살아나 제재 국면을 더 버틸 여력이 생긴다”며 “미국은 현 상황에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면 제재로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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