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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부패를 먹고 크는 중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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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듯, '국진민퇴(國進民退)'는 시진핑 경제 정책의 핵심이다. 이 말이 본격 등장한 건 2008년이다. 그때 이미 '국가가 나서고 민간은 빠진다'라는 정책 기조가 뚜렷이 나타났다. 당시 상황을 봐야 할 이유다.

그해 8월 중국에서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다.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는 개막식에서 솟아오르는 중국의 힘을 세계에 과시했다.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 굴기'의 홍보 이벤트를 방불케 했다.

올림픽이 막 끝난 9월 15일,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졌다.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것이다. 위기는 서방 경제를 강타했고, 글로벌 경제를 얼어붙게 했다.

주목할 건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돈을 풀었다. 당시 GDP(국내총생산)의 약 13%에 해당하는 4조 위안을 경기 부양을 위해 쏟아냈다.

돈은 국유은행-국유기업을 통해 시장에 풀렸다. 국유기업이 위기극복의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다. 반면 수출 역군이었던 민영기업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서방 시장에서의 주문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말이 바로 '국진민퇴'였다.

국가 돈 가는 곳에 부패 생긴다

2008년 막대한 정부 돈이 풀린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철도 산업이다. 말 그대로 '돈 폭탄'을 맞았다. 2007~2010년 고속철도 사업에 투입된 돈만 대략 3000억 달러에 이른다(세계은행 통계).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고속철도가 깔리기 시작했고, 전국 주요 도시는 전철 건설 공사판으로 변했다.

철도 경제(Locomotion Economy). 정부가 푼 4조 위안의 재정은 그렇게 쓰이고 있었다.
그 막대한 돈은 과연 제대로 쓰였을까.

2010년 하반기, 이상한 풍문이 돌았다. 사정 당국이 철도부 부패에 칼을 댄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듬해 2월 결국 곪았던 게 터졌다. 중국 언론에는 '철도맨' 부패 사건이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40여년 철도부에서 잔뼈가 굵은 류즈쥔(劉志軍) 부장(장관) 얘기였다.
류즈쥔 철도부장이 먹은 돈은 보도된 것만 대략 100억 위안(당시 환율 약 1조7000억 원). 그는 정부(情婦) 18명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위가 썩으면 반드시 아래도 썩는다. 철도부 운송 국장이었던 장수광(張曙光) 역시 부패 혐의로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그는 미국과 스위스에 28억 달러 예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A에 호화주택 3채를 갖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복마전 철도부는 결국 해체되기에 이른다.

철도부는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돈이 가는 곳에 파리(부패 공무원)가 꼬였다. '나랏돈 안 먹으면 바보'라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2022년 12월 12일, 중철건설(中鐵建設)그룹이 진행 중인 구이저우(貴州)성 구이양(貴陽)과 광시(廣西)좡족자치구 난닝(南寧)을 잇는 구이난(貴南)고속철도 리보역의 골조공사 현장 [사진 신화통신]

2022년 12월 12일, 중철건설(中鐵建設)그룹이 진행 중인 구이저우(貴州)성 구이양(貴陽)과 광시(廣西)좡족자치구 난닝(南寧)을 잇는 구이난(貴南)고속철도 리보역의 골조공사 현장 [사진 신화통신]

반도체로 몰리는 '파리'들

2025년 70% 달성!

시진핑이 2015년 만든 반도체 국내 자급률 비전이다. 역시 중국이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반도체 산업 투자계획이 잇따라 발표되고, '돈 폭탄'이 투하됐다.  2014년 1390억 위안, 2019년 2040억 위안 규모의 국가 반도체산업투자펀드(빅펀드)가 조성됐다. 우리 돈 대략 65조 원 규모다.

중앙정부가 나서지 지방이 따른다. 각 지방은 투자공사를 통해 '반도체 총알'을 마련하고, 산업단지를 깔기 시작했다. 주요 도시에 반도체 관련 회사들이 봄 동산 불타오르듯 번졌다.

그 중 우한훙신반도체(武漢弘芯半導體, HSMC)라는 회사도 있었다. 회장 리쉐옌(李雪艳)이 2017년 11월 후베이성 우한시에 설립한 회사다. 대만 TSMC의 부사장(COO) 이었던 장상이(蔣尙義)를 CEO로 영입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럴듯했다. 리쉐옌은 '내가 네덜란드 ASML 고위층 인사를 안다. 7나노 생산이 가능한 극자외선노광장비(EUV)를 들여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솔깃했다. 초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의 최대 난제를 해결해준다니 말이다.

금방 무엇인가 될 듯했다. 리 회장은 CEO 장상이와 함께 TSMC의 기술자 100여명을 영입했다. 우한 산업단지에 공장 부지도 조성했다. '중국 반도체 입국의 선도자'가 되겠다며 홍보 영상을 만들어 뿌렸다.

돈이 몰렸다. 우한시 시정부가 돈다발을 들이밀었다. 중국 국가 반도체 펀드를 포함해 4년간 1280억 위안이 몰렸다. '자급률 70%'라는 국가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얘기다.

사기였다. 들여오기로 한 EUV는 차일피일 늦어졌다. 공장 부지 공사는 투자가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헛땅 파기였다. 우한시가 '사기' 결론을 내린 보고서를 만든 건 2022년 7월이다. ASML도, 7나노 생산도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리쉐옌 등 설립자들은 여전히 행방도 모른다. 먹튀다.

CEO 장상이 조차 'HSMC에서의 경험은 악몽이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HSMC는 해체 수준을 밟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빅펀드 관련 고위 인사들의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다. 딩원우(丁文武) 기금 총경리가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기술정보 산업을 총괄하는 공업신식화부의 샤오야칭(肖亞慶)부장이 반도체 관련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중국 경제는 '부패'를 먹고 큰다?

나랏돈 가는 곳에 부패 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중국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다. 국가가 나서 돈을 뿌릴 때, 국유기업의 활동이 두드러질 때, 부패는 여지없이 기승을 부린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부패의 반전' 말이다.

중국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쏟아 부은 4조 위안의 경기부양 자금은 부패를 양산했다. 철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사업에서 부정부패가 싹텄다. 이 정도라면 나라 경제가 흔들려야 맞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 경제는 당시 퍼부은 4조 위안에 힘입어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넘버투 경제 대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지독한 '부패의 역설'이다.

당시 중국 철도부의 부패는 전 세계의 조롱의 대상이었다. '사회주의 부패 공화국'이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그곳에서도 반전은 여지없이 일어났다. 중국은 지금 세계 최고의 '고속철도 강국'이다. 전 세계에 깔린 고속철도의 60%가 중국에 있다. 질적으로 중국은 세계 최고 고속철도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 나랏돈이 몰리고 있는 반도체 분야는 과연 어떨까?

이 분야에서도 '부패의 반전'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도 반도체 부패는 자라고 있겠지만, 그 부패를 딛고 중국 반도체는 업그레이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진핑이 추진하는 반도체 공정에 대해 쉽게 '실패했다'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여전히 알다가도 모를 중국이다.

차이나랩 한우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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