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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속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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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시중의 그 어떤 연금 상품도 국민연금보다 실질 수익이 높은 건 없다. 일단 물가상승률을 반영한다. 가입 당시가 아니라 수급 시점에 환산한 소득을 기준으로 연금을 준다. 수익비도 좋다. 2.2 정도인데 보험료 대비 받는 연금이 2배 이상이란 뜻이다. 수익비는 나이가 많을수록 높다. 19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할 땐 많은 가입자가 본인과 부모의 노후를 함께 책임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초기엔 보험료를 적게 내고, 차츰 보험료율을 높여가도록 설계했다. 실제 3%로 시작한 보험료율은 1993년 6%, 1998년 9%로 올랐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경제성장, 연금재정 등을 고려해 보험료율을 높이는 건 연금 선진국이 보편적으로 쓰는 방식이다. 우리도 계획대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번번이 묻혔다. 표 계산이 중요한 정치권에서 ‘미래를 위해 더 내자’는 입바른 소리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24년이 지났다. 보험료율을 높여 부담을 나눴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이 기간 연금을 납부한 세대는 상대적으로 혜택을 본 셈이다.

예측대로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7년 고갈된다. 곳간을 다 털어먹고 나면 그해 걷어서, 그해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때 근로 세대의 보험료율은 약 35%로 뛴다. 나는 9%를 내고 받는데, 내 자식은 4배를 내고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개혁의)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책 최고 책임자의 결연한 의지는 반갑다. 하지만 개혁의 각론은 지난한 작업이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령 시점, 연금 통합까지 복잡한 산식을 풀어야 한다. 논의가 길어질수록 이견은 늘고, 실타래는 꼬일 것이다. 2024년엔 총선도 있다. ‘더 내고, 더 받자’는 분위기로 흘러갈 여지가 충분하다.

다 할 수도 없지만, 다 할 필요도 없다. 다행히 보험료율 인상은 전문가 사이에도 큰 이견이 없다. 3%포인트만 올리면 기금 고갈을 8년가량 늦출 수 있다. 그만큼 미래 세대의 부담도 줄어든다. 현 정부가 보험료율 단계적 인상을 확정하고, 이후 시나리오만 내놔도 성공한 개혁으로 볼 만하다. 그러니 대통령 말대로 ‘이번 정부 말 또는 다음 정부 초’까지 갈 일이 아니다. ‘더 내자’고 설득할 용기만 있다면 내년에도 끝낼 수 있다. 개혁은 방향만큼 속도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