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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한국판 서브프라임의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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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부 차장

조현숙 경제부 차장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에 돈을 걸었어. 우리가 옳으면 사람들은 집을 잃고 직장도 잃고 은퇴 자금도 잃어. 실업률이 1%포인트 증가하면 4만 명이 죽는다는 거 알고 있나.”

영화 ‘빅쇼트’(2016)의 한 대목이다.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간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전말을 다뤘다. 미국 부동산·금융 시장 붕괴에 베팅한 ‘초짜’ 펀드사 대표 찰리와 제이미가 큰돈을 손에 쥐게 됐다며 기뻐하자, 이들을 도운 전직 트레이너 벤 리커트는 이렇게 소리친다.

한국 부동산 시장이 한없이 미끄러지는 중이다. 바닥까지 아직 닿지 않았다. 부동산 가격을 꺼트린 금리가 어디까지 더 오를지, 높은 금리가 얼마나 더 갈지 아직 안갯속이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방아쇠’ 역할을 한 것도 금리였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연 1%까지 내렸던 정책금리를 5.25%까지 끌어올렸다. 치솟는 물가 때문이었다. 초저금리에 가려져 있던 주택대출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금융시장 붕괴로 이어졌다. 제대로 된 직장도, 소득도 없는 사람에게 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을 해주고 집을 사라 부추긴 게 화근이었다.

지금 상황은 그때와 판박이다. 물가 상승→금리 인상→부동산 가격 하락. 차분히 단계를 밟아가는 중이다. 다른 점도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 상황이다. 2007년 3분기 68.2%였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올해 3분기 105.2%로 튀어 올랐다(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한해 국가 전체가 번 돈을 다 쏟아부어도 가계빚을 다 갚지 못한단 의미다.

그런 와중 정부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같은 대출규제가 있어 은행이 연달아 무너지는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작다고 거듭 강조한다. ‘영끌’해서 산 집값이 반 토막 나든, 갭투자 사기로 전세 보증금을 날리든 은행은 오른 금리에 맞춰 또박또박 대출이자와 원금을 걷어갈 테니 문제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다시 ‘빅쇼트’의 한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위기를 예측했던 헤지펀드 매니저 마크 바움의 대사다. “결국 사기는 들통나고 실패한다. 종국엔 일반 국민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늘 그래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