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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소셜미디어와 거리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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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형수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형수 국제부 기자

박형수 국제부 기자

“2024년이면 민주주의는 와해할 것이다.”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레사(59)의 경고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의 반(反) 인권적 폭력성과 언론 탄압을 비판해온 그는 지난 9월 한국을 방문해 “민주주의를 지킬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2년 내 민주주의가 몰락할 거란 그의 예언엔 단서가 붙었다. ‘소셜미디어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이다. 그는 페이스북 등에서 가짜정보가 사실보다 6배 빠르게 퍼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가짜정보는 분노·혐오 감정을 증폭하고, 사실을 외면한 채 감정에 들끓게 한다고도 했다.

특히 ‘정치권력과 소셜미디어의 야합’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기존 언론사를 상대하지 않고 팬덤에 기반한 댓글부대를 이끈다고 했다. 정치인들은 사실 대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맹목적인 지지자들을 여론전의 무기로 활용한다.

레사는 소셜미디어가 지금처럼 작동할 경우, 민주적 절차로 민주주의가 종말을 맞을 거라 우려했다. 권력자 입맛대로 왜곡된 정보를 믿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민주적 선거로 독재자가 당선되고 다수결에 의해 파시즘이 도래한다는 얘기다. 지난 5월 필리핀 대선에서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에 대해 “기성 언론과 담쌓고 소셜미디어 여론전을 펼치는 방법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고 주장했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의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권력자가 더 크고 명백한 거짓말을 할수록 지지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충성을 입증하려 하고, 그 결과 잘못된 권력을 더욱 열성적으로 옹호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달콤한 거짓’이 ‘불편한 사실’을 무력화한 사례는 한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올 한해만도 거짓 정보로 상대를 공격하고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반성하지 않는 정치 권력자, 그들의 거짓과 뻔뻔함이 강력할수록 더욱 공고히 뭉치는 지지세력을 숱하게 봐왔다. 레사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에서도 민주주의의 종말이 걱정되는 요즘이다.

스나이더는 “참된 것과 매력적인 것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때 권위주의가 시작된다”고 했다. 새해엔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는 유혹을 떨쳐보면 어떨까. 소셜미디어와의 거리두기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