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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억8000만원이 4억5000만원…세종 집값이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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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20년 전국 집값 상승률 1위를 차지했던 세종시가 올해는 정반대로 집값이 가장 많이 떨어졌다. 사진은 세종시내 모습. [중앙포토]

2020년 전국 집값 상승률 1위를 차지했던 세종시가 올해는 정반대로 집값이 가장 많이 떨어졌다. 사진은 세종시내 모습. [중앙포토]

지난 26일 오후 찾은 세종시 어진동의 한 상가. 이곳에 몰려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3곳에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문의 전화조차 뜸했다. 사무실 창문엔 ‘급매물’ 표가 여럿 붙어 있었다. 인근 도담동 분위기도 비슷했다. 도담동의 한 중개업소 직원은 연락처를 남긴 고객들에게 급매물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도램13단지 24평 3억5000만원에 가능합니다. 연락 주세요’ 같은 내용이다. 지난해 말 5억2000만원에 거래된 도램13단지 59㎡(이하 전용면적)는 1년 만에 1억7000만원가량 하락했다. 지난해 2월 6억1000만원까지 거래됐던 아파트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값이 더 내려가길 기다리는 수요가 많다 보니 급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한솔동의 한 주민은 “1년 전 부동산에 10억원에 내놨던 집이 6억5000만원까지 내려갔다”며 “매달 내는 대출 이자는 200만원으로 불어나 속이 타들어간다”고 말했다.

매매수급지수 역대 최저, 거래도 반토막

세종시 주택시장에 불어닥친 한파가 가시지 않고 있다. 2020년만 해도 세종시 아파트 값은 연간 44.9% 뛰며 전국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당시 정치권에서 띄운 행정수도 이전 등 ‘천도론(遷都論)’ 이슈로 투자 수요가 몰린 영향도 컸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반대로 치달았다. 올해 세종시 아파트 값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떨어졌다. 현장에선 “체감 경기는 세종시 건설 이후 최악”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세종시 아파트 값은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15.31% 내렸다. 전국 시·군·구를 통틀어 가장 큰 하락률이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값은 6.51% 하락했다. 직전 최고가 대비 ‘반 토막’ 난 단지도 속출했다. 한솔동 첫마을 1단지(퍼스트프라임) 59㎡는 지난해 2월 6억3000만원에 팔렸지만, 올해 11~12월엔 3억원에 2건이 거래됐다. 고운동 가락19단지(세종파라곤) 84㎡도 최근 4억5000만원에 거래돼 최고가(8억8000만원)보다 49% 내렸다. 고운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매주 가격이 1000만원씩 빠지는 것 같다”며 “대출이 많은 집주인이 이자 부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급매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집을 사려는 수요는 끊기고 거래도 급감했다. 지난주 세종시 매매수급지수는 50.6으로 역대 최저다. 기준선인 100의 절반 수준으로, 집을 팔겠다는 사람은 넘치는데 사려는 사람은 적다는 뜻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거래된 세종시 주택은 199건으로 1년 전(365건)보다 45.5% 줄었다.

세종시 집값 하락이 거센 이유는 복합적이다. 시작은 ‘공급 폭탄’이다. 직방에 따르면 2020년 4062가구였던 세종시 입주 물량은 지난해 7668가구로 88.8% 증가했다. 올해 들어선 2157가구로 줄었지만, 이번엔 가격 급등에 대한 부담감과 금리 인상이 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간 집값에 거품이 잔뜩 낀 만큼 하락기에 가격 낙폭도 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여기다 인구 유입도 주춤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10월 세종시 순유입 인구는 905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705명)보다 15% 줄었다.

청약경쟁률 올초 1362대1…이달엔 미달

청약 열기도 식어 청약 미달 단지까지 등장했다. 지난 3월 고운동에서 분양한 가락마을 6·7단지는 1순위 평균 136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하지만 9개월 만인 이달 세종시에 나온 한신더휴 조치원은 137가구 모집에 129명(1순위)이 신청하는 데 그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당분간 분위기가 바뀌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세종시는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46.8%, 11월 기준)이 전국에서 가장 낮다”며 “집값이 아직 사용가치보다 오버슈팅(일시적 폭등)한 측면이 강하단 뜻”이라고 말했다. 투자자가 유입되려면 전셋값이 올라 ‘갭투자’(전세 끼고 집 사는 것)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세종시 전셋값은 올해 18.4% 급락했다.

일각에선 집값 하락이 진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내년 입주 물량(1453가구)이 올해보다 줄고 규제지역에서 풀린 점 등을 고려할 때 집값이 계속 빠지진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가격이 폭락한 만큼 매수 수요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집값 하락세가 가팔랐던 대구시 등과 달리 미분양 물량(6가구)이 거의 없다는 점도 반등론에 힘을 싣는다.

전문가들은 “집값 추락도 문제지만, 실물경기 위축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가치가 급격히 쪼그라들면 주택 소유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가계 소비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세종시에 거주 중인 40대 공무원 A씨는 “지난해 빚을 내 아파트를 사 ‘상투’를 잡은 지인이 제법 있는데, 집값 하락에 금리까지 오르자 최대한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내년에는 기획재정부조차 경제성장률을 1%대로 보고 있다. 최근 부동산 세금 규제가 완화됐다고 해도 금리까지 오르고 있어 당분간 부동산 시장 침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하락은 소비 위축은 물론 건설 수요 감소, 일자리 감소 등으로 이어져 지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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