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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마른수건 짰다고? 與실세 5인 '9200억' 알짜 예산 챙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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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4일 새벽 내년도 예산안 통과 뒤 산회가 선포되자 여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새벽 내년도 예산안 통과 뒤 산회가 선포되자 여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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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수건 짜듯 편성했다.”

여야의 예산안 협상이 난항을 겪던 지난 9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긴축·건전 재정을 기조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은 ‘마른 수건’처럼 쥐어 짜도 더 나올 예산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24일 새벽 갖은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예산안을 보니 실상은 달랐다.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에는 정부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다가 국회에서 끼워넣은 예산들이 수두룩했다. 큰 틀에서 이른바 ‘쪽지 예산’이 이번에도 횡행한 셈이다.

‘원조 윤핵관(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인 부산 사상구에 투입될 예산을 쏠쏠하게 챙겼다. 노후공단 재정비 지원 사업으로 ‘사상드림스마트시티’(구 사상공단)에 20억9400만원, 재해위험지구 정비 사업으로 부산 사상 삼락지구와 학장감전2지구에 17억300만원과 6억1500만원이 각각 증액됐다. 또 부산시 사업인 낙동강 유역 안전한 먹는 물 공급 체계 구축 사업 예산(19억2000만원)도 장 의원이 확보한 주요 예산으로 꼽힌다. 당초 예산안에 없던 물 공급 구축 사업은 장 의원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과 기재부 관료를 설득해 증액한 예산이라고 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실세 초선’ 여당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도 상당히 늘었다.

최고위원을 지낸 배현진(서울 송파을) 의원은 송파구 관련 예산을 다수 확보했다. 예결위 단계에서 석촌·가락1동 경찰지구대 신설(116억원), 석촌생활권 책박물관 내 복합문화체육시설 건립(236억원) 예산이 증액됐다. 배 의원은 예결위에서 예산의 증·감액을 책임지는 예산소위 위원으로 참여했다.

검찰 출신의 유상범(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 의원도 짭짤한 성과를 올렸다. 유 의원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폐광지역 관광산업 활성화(21억5000만원), 평창 공설묘지 자연장지 조성(4억9000만원), 횡성 산악도로 기반 자율주행 실증평가 인프라 구축(20억원) 등의 예산이 국회 심사 과정에서 추가로 투입됐다.

또 다른 친윤계 박수영(부산 남갑) 의원은 부산 용호동 해양레저 안전체험관 건립 예산 유치에 관여했다. 당초 정부안엔 88억8200만원이 포함됐는데 국회를 거치며 7억5000만원이 추가로 배정됐다. 흥미로운 점은 체험관 자체는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남을 쪽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부산 남갑-을 지역구는 차기 총선 때 인구 감소로 인해 통합될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박수영 의원이 박재호 의원과 총선에서 경쟁할 걸 고려해 미리 예산을 챙긴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꼬리표가 달린 예산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정진석(충남 공주-부여-청양) 비상대책위원장 지역구와 관련해선 광역 간선급행버스체계(BRT) 구축사업 공주~세종 구간에 14억원이 증액됐다. 공주대 평생교육원과 예술관 리모델링 사업은 당초 지원금이 없었다가 5억7800만원이 새로 생겼다. 전자정부를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공주센터 운영관리에도 당초 0원이던 예산이 10억으로 늘었다. 주호영(대구 수성갑) 원내대표 지역구와 관련해선 원래 예산 배정액이 없던 수성못 스마트여행자거리 조성 사업에 3억원이 새로 배정됐다. 성일종(충남 서산-태안) 정책위의장은 대산~당진 고속도로 사업(80억원) 등 국회 논의 과정에서 111억400만원 상당의 예산을 증액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역시 알짜 지역 예산을 챙겼다.

위성곤(제주 서귀포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정부안에 없던 서귀포시의 유기성 바이오가스화 사업 예산으로 62억원을 따냈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박정 의원(경기 파주을)은 파주 음악전용공연장 건립 예산으로 30억원을 확보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인 윤관석(인천 남동을) 의원은 서창~안산 고속도로 건설(334억원) 등 506억원을 확보했다.

친이재명계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역구 예산과는 별개로 불교계 요청을 받고 문화재 관람료 감면 지원 예산 421억원을 신규 반영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대선 국면에서 사찰이 등산로 입구에서 관람료를 받는 것을 두고 “봉이 김선달”이라 비판해 불교계 반발을 샀다. 불교계와의 갈등 해결을 위해 정 최고위원은 지난 4월 등산객의 문화재 관람료를 감면하는 대신, 사찰에 감면액만큼을 지원하는 문화재 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데 앞장을 섰고, 이번에 예산 확보까지 앞장섰다. 정 최고위원 측 인사는 “상임위 심사부터 애쓴 결과”라고 말했다.

실세는 정부가 예산안 짤 때부터 미리 반영

최근 정치권에선 정부가 예산안을 짤 때부터 미리 사업 내역을 반영하는 게 ‘능력’으로 치부되고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예산이 증액되면 ‘쪽지 예산’이란 비판을 받는 만큼 정부에 직접 민원을 넣어 예산을 확보하는 게 여러모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여권 실세인 장제원 의원은 이미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때부터 반영된 예산 사업이 많았다. ▶사상-하단선 도시철도 건설(443억원) ▶부산환경공단 위생사업소(분뇨처리시설) 지하화(345억원) ▶대저대교 건설(154억원) ▶리버타워 건설(25억원) 등으로 서부산권의 숙원으로 꼽히던 사업들 상당수가 장 의원의 손을 거쳐 애초 예산안에 포함됐다.

정부 예산안에는 배현진 의원의 지역구 인근인 송파경찰서의 재건축(709억원) 비용이 포함됐었고, 이번에 국회 문턱까지 넘었다. 당초 정부 예산안에서 삭감 없이 최종 확정된 유상범 의원 지역구 관련 예산도 ▶영월 국도 59호선 단양-영월 구간 건설(103억원) ▶평창 그린바이오 벤처캠퍼스 조성(24억원) 등 9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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