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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 "그냥 부결시켜라"…반도체 업계 뒤집은 'K칩스법'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당선인 시절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 반도체 연구 현장을 둘러보며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당선인 시절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 반도체 연구 현장을 둘러보며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국내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K-칩스법’이 여야의 당초안을 대폭 후퇴한 채 국회 문턱을 넘어서자 미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가 국가 간 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떠올랐지만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25일 반도체 업계와 재계, 학계 등은 국회가 지난 23일 K-칩스법의 양날개인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이러다가 ‘반도체 빙하기’가 오게 생겼다” “미래 인재 키우기가 물 건너갔다”며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대기업의 세액공제 규모는 여당안(20% 공제)은 물론 야당안(10% 공제)에도 미치지 못한 6→8%로 ‘찔끔’ 상향됐다.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는 그대로 유지된다.

“차라리 부결시켜 달라” 목소리도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산업계·학계 등에서는 ‘이렇게 통과시킬 바엔 차라리 부결시켜 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며 “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는 국가적 관점에서 경쟁력을 따져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화단지를 지정해줘도 세액공제가 낮아 반도체 생태계 구축이 상당히 위축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원회에 참여했던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당시 법안을 만들 때 세액공제율 20%를 제시했었다”며 “대통령실에서 공제율 하향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의견을 냈어야 하는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반도체는 국가안보의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라며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미국과 일본 등 경쟁국들은 세제 혜택을 ‘당근’ 삼아 반도체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25%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을 제정했다. 중국은 반도체 기업의 공정 수준에 따라 법인 소득세를 50~100% 감면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87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지원한다. 대만도 자국 내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을 15→25%로 상향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23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일본은 TSMC 공장 건립 때 절반 지원”

실제로 미국은 지난 2일 텍사스주 셔먼에 착공한 대만 글로벌웨이퍼스에 연방정부와 주(州)정부가 각각 15%·10%의 현금 보조금을 주고 25%의 세액공제율을 적용해줬다. 일본도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활용해 구마모토에 짓는 TSMC 반도체 공장 건립비용의 절반인 4760억 엔(약 4조6000억원)을 지원한다.

박재근 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한양대 교수)은 “한국은 보조금은커녕 세액공제율도 낮다”며 “지금 투자 시기를 놓치면 2~3년 뒤엔 기술이 있어도 생산을 못 해 시장을 빼앗기게 된다. 한번 시장을 잃으면 돌이킬 수 없다”고 경고했다.

중장기적으로 인재 확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용석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사업 여건이 좋은 쪽에 투자가 쏠릴 수밖에 없다. 이러면 우수 인력까지 따라가게 마련”이라며 “돈과 사람이 빠져나가면 ‘반도체 빙하기’에 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균발’에 발목 잡힌 인재 육성 

세액공제와 함께 전문인력 양성, 인허가 간소화 등도 대폭 후퇴하거나 공전을 이어가고 있다. 당초 첨단산업특별법 개정안에는 ‘수도권대학의 정원 규제와 무관하게 반도체 등 전략산업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린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당정 협의 과정에서 ‘수도권대 특혜’ 논란이 일며 대학 내 정원에서 조정하는 방향으로 후퇴했다.

학계에선 반발이 터져 나왔다. 지역균형발전(지균발)의 논리에 가로막혀 ‘미래먹거리’가 발목 잡힌다는 취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교수 생존이 달린 문제라 학제 개편은 수도권대나 지방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며 “이러면 지방대도 반도체학과를 만들기 힘들 것이다. 인재 양성 자체가 물 건너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핵심 내용인 반도체 특화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에 대한 내용도 일부 후퇴한 채 합의했지만, 아직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이에 대해 “반도체 인력 양성과 R&D 등에 1조원의 재정을 지원할 예정이므로 정부 지원이 미국·대만보다 못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같은 당 윤주경 의원은 “세액공제율이 부족하다는 건 공감한다”며 “미국·대만처럼 기업 맞춤형 지원 정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1조 적자 예상…‘골든타임’ 대책을

한편 국내 반도체 업계는 침체 사이클이 뚜렷해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전망치(컨센서스)는 각각 71조8611억원, 6조6426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6.14%, 52.1% 급감한 수치다. SK하이닉스는 1조778억원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중국의 반도체 산업 견제, 유럽의 자구 노력 등 힘겨루기가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 반도체 공급 과잉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계는 ‘반도체 투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빠르게 후속 조치를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국회와 정부가 단기적인 세수 감소 효과에 매몰된 듯하다”며 “시설투자 세제 지원은 한국이 미래산업 주도권을 확보하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K-칩스법=‘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첨단산업특별법) 개정안과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으로 구성돼 있으며, 첨단전략산업인 반도체·배터리·바이오(백신) 등에 기업이 투자할 때 세제 혜택을 주고, 인재 양성을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반도체특별법’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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