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의 미적거림/김두우 정치부 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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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자제협상 문제에 관한 정부ㆍ여당측의 최근 태도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7월 국회 날치기 통과 이후 4개월 동안 정치부재 현상을 빚어온 상태에서 여야간에 정국정상화의 전제 조건으로 부각돼온 지자제협상을 놓고 여권이 뒤늦게 「배짱」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제협상은 16일 여야 총무접촉에서 완전 타결될 전망이었으나 평민당이 의총을 열고 여당안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한 그 시점에 민자당의 느닷없이 총무접촉을 하루 연기시켜 버렸다.
민자당은 이런 태도는 그동안 야당을 등원시키기 위해 정기국회 개회 후 두 달 넘도록 휴회하면서 막후교섭을 벌이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어서 그 속셈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민자당이 이렇듯 지자제협상 타결에 늑장을 부리는 것은 집권여당과 정부간의 지자제 실시에 대한 견해차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내막적으로는 정부 쪽에서 지자제를 실시하지 않으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들이다.
16일 오전 삼청동 안가에서 열린 고위당정회의에서 정부측은 『지자제가 92년대 전면실시될 경우 행정체계에 큰 혼란이 생긴다』며 부단체장에 대한 중앙정부의 임명권 보장,선거구 조정문제 등을 제기했다.
정부측은 최근 경제난과 선거준비 미비 등을 이유로 내년 상반기 지방의회선거 실시 등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자제 실시로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처럼 중대한 문제라면 왜 야당 등원의 협상용으로 지자제문제를 사용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 여야간에 협상을 계속하는 동안 당정간에 이견조정이 전혀 안됐다가 협상이 타결될 시점에 와서야 정부측에서 제동을 걸었다는 설명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차라리 『정부ㆍ여당은 지금시기에 지자제를 실시할 생각이 없다』고 당당하게(?) 밝혀야 했을 것이다.
금년 6월까지 실시하기로 합의했던 지자제를 『3당 합당으로 원인무효됐다』며 뚜렷한 설명없이 넘어가 버린 거대여당이 지금 또다시 우물쭈물하는 모습은 여권의 의도와 신뢰성을 의심케 한다.
앞으로 지자제법 성안과정에서 정부나 여당이 계속 트집거리를 만든다면 지자제 실시 연기의 모든 책임은 정부가 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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