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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불황은 와도 겨울은 안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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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헤르만 폴러프

헤르만 폴러프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으로 가파르게 성장하다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반도체 예측 기관 이곳저곳에서 내년 매출 감소를 전망하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과 유럽·중국·대만·한국 등은 전략물자 반열에 오른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반도체가 제2의 석유이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호황 국면에 있다가 둔화 조짐이 두드러지면서 근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의 헤르만 폴 러프(사진) 반도체 애널리스트를 최근 줌(Zoom)으로 인터뷰했다. 도이체방크의 반도체 보고서 ‘이례적 반도체 사이클(Extraordinary Semiconductor Cycle)’의 대표 저자다. 이 보고서는 2021년 ‘반도체 겨울’을 경고한 모건스탠리와는 사뭇 다른 전망으로 증시와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글로벌 머니가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호황과 불황의 교차 이유는.
“삼성전자나 TSMC는 거대한 설비를 갖춘 회사다. 첨단 제품을 개발해 설비를 갖춘 뒤 생산해 개발과 생산 비용뿐 아니라 이익을 회수한다. 이 과정에서 가격 상승과 설비 증설 시점엔 시차가 발생한다. 이 시기에 공급이 부족해진다. 숙명처럼 호황과 불황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산업 내 맥박이 어떤 때엔 강하게 뛰다가 어떤 때는 약해진다.”
현재 반도체 사이클을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도이체방크)는 이번 반도체 사이클의 호황이 2019년 10월 시작된 것으로 봤다. 과거 일곱 차례 반도체 사이클을 살펴보면, 한번 호황이 발생하면 3년째 되는 해에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21년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겨울이 오고 있나?’란 보고서를 통해 2022년 1분기 전후에 반도체 시장에서 수요 감소가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후 주요 메모리 회사 주가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이른바 반도체 겨울 논쟁의 시작이었다.

호황은 과잉 설비와 공급 과잉으로 이어지는데.
“과거 반도체 호황 시기의 매출과 설비투자를 분석해 보면 상관계수가 0.85에 이른다. 매출이 증가하면 설비투자가 늘어나는 게 법칙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호황의 정점에서 경기 저점에 이를 때(불황 사이클)는 매출이 평균 22% 줄었다. 2000년 정점에 도달한 호황기 직후엔 매출이 46% 넘게 감소했다. 불황 사이클은 평균 12.5개월 정도였다.”
‘반도체 겨울’이 엄습한다는 건가.
“불황과 겨울은 의미가 다르다. 반도체가 필요한 산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예컨대 전기차가 늘어나면 반도체 수요도 증가한다. 산업의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로 인해 자동차뿐 아니라 수많은 산업이 디지털화됐다. 둘째, 팬데믹 충격이다. 코로나19로 디지털화가 빨라져 반도체 수요가 더욱 늘어났다. 불황이 오더라도 겨울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겨울의 의미 자체는 분명치 않다. 침체와 공황 논쟁처럼 매출과 투자가 얼마나 줄어야 불황인지 또는 겨울인지의 논쟁이다. 도이체방크는 매출 감소가 과거 일곱 차례 사이클보다 더 감소해야 겨울로 본다고 했다. 반면에 모건스탠리 쪽은 일반적인 불황을 겨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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