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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AI가 한국 정치에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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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미국의 인공지능(AI) 연구재단 오픈AI가 지난 1일 공개한 챗봇 ‘ChatGPT’는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 또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결과물을 뚝딱 만들어낸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글을 바로 작성할 수 있고, ‘탁구 게임용 파이선 코드를 만들어 달라’면 순식간에 게임 하나를 만들어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금까지 육체 노동자의 일자리를 대체했던 로봇과 자동화가 이제 ChatGPT 같은 AI가 나옴으로써 데이터 분석이나 연구, 기사 작성 등 지식 노동자가 담당하던 일자리를 빼앗아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AI 개발이나 실행 등의 분야에서는 새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닥친 미래인 ChatGPT에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진영 대립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물었다. 그러자 즉각 ▶정기적 만남과 대화를 통해 소통을 확대하고 ▶상대방의 시각을 존중하는 포용을 장려하며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제도를 만들며 ▶법의 지배와 사법·언론기관의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미국 챗봇AI, 여야대립 완화 제시
“만나서 대화하고 상대 포용하라”
윤 대통령, 야당과 소통·타협해야

지난 11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에 투표하는 민주당 의원들. [연합뉴스]

지난 11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에 투표하는 민주당 의원들. [연합뉴스]

ChatGPT의 답변은 한국 정치 현실과는 맞지 않는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 정치가 얼마나 민주주의 원칙에서 벗어난 상태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야는 마주 달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대화와 타협 없이 상대방의 양보만을 요구한다. 합의 후 시동도 걸지 못한 ‘이태원 국정조사’와 예산안 합의 처리가 불발되는 등 국회 공전 사태가 길어지며 두 당에 대한 국민 시선은 싸늘하다. 여야 대치의 가장 큰 책임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12일 발표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긍정 평가는 38.4%지만, 부정 평가는 58.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부는 대통령이 이끌고, 의회는 야당이 이끄는 상황에서 양쪽은 극단 대립으로 국민을 불안에 빠트리고 있다. 윤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상황에서 이렇게 반목하는 데 4년 5개월의 남은 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치의 핵심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한다고 보기 힘들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초반 높은 지지율을 보이다가 후반에 급락했다. 대선을 앞두고 집권당 의원들이 대선 주자에게 몰리며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모습도 많이 봤다. 윤 대통령은 집권 초반부터 낮은 지지율에 빠져 있다. 지지율을 끌어올릴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 동력을 찾으려면 민주당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현재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대장동 사건’ 등으로 문재인 정권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정조준하면서 윤 정부와 민주당의 대립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잘못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으나 정확하고 신속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치 대립이 격화돼 국정 운영은 파행이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권이 오랜 끈 적폐청산의 부작용을 보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은 노동시간 유연화와 정년 연장 등을 포함한 노동 개혁과 건강보험 급여와 자격 기준을 강화하는 건강보험 개혁을 추진하려 한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대부분 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 미국의 금리 인상과 미·중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내년 한국 경제는 힘든 시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정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한국의 앞날은 암담하다.

여야의 극한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윤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진영의 우두머리가 아닌 국민 전체의 지도자라는 마음으로, 민주당 지도부를 만나 대화와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권한의 상당 부분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국무총리를 민주당이 추천하도록 하고 실권을 주는 연립정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노동·건강보험·연금 개혁 등 핵심 의제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총리에게 위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진영 대결을 완화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윤 대통령이 임기 내내 진영 싸움에 휘말릴지, 아니면 핵심 의제에서 성과를 거둔 지도자로 평가될지는 그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