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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분향소서 보수단체 맞불집회…진영 갈등의 장 되나

중앙일보

입력

15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주변 이태원광장은 유가족협의회가 차린 시민분향소와 보수단체가 설치한 천막으로 남북이 갈라졌다.

  합동분향소는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참여연대 등 진보성향 시민단체가 주축인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와 공동으로 하루 먼저 이태원광장 북측에 마련됐다. 두 천막이 한자리에 있게 된 건 보수단체인 ‘신자유연대’가 분향소 설치 이틀째인 이날 이태원광장에 집회 신고를 하면서다. 분향소를 방문해 국화꽃을 헌화하고 고개를 숙이는 시민들 너머로 신자유연대 측이 내건 “이태원 참사 추모제 정치 선동꾼들 물러나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유가족협의회 창립식 때 ‘세월호 정쟁’ 발언 논란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위치한 시민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분향하고 있다. 최서인 기자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위치한 시민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분향하고 있다. 최서인 기자

 이날 양측 간 물리적 충돌은 없었으나 신자유연대의 맞불집회가 지속될 경우 이태원 참사가 진영 갈등의 상징처럼 자리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가족협의회가 사실상 진보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지원을 받아 출범했고, 여권 안팎에서는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연대 움직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공식 석상에 나선 건 지난달 22일이 처음이다. 당시 희생자 34명의 유가족은 민변 대회의실에서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유가족협의회가 공식으로 꾸려진 건 지난 10일이다. 협의회에 참여 의사를 밝힌 유가족은 희생자 97명의 유족 170여명으로 확대됐다. 당시 민변의 ‘이태원 참사 태스크포스(TF)’가 유가족협의회 창립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이 열리던 시간 유가족협의회 측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결합해서 정부를 압박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글을 올린 사실이 전해졌다. 권 의원이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유족들은 격앙됐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민 부대표는 “세월호 유가족들도 자식을 잃고 슬픔과 비통함 때문에 정부에 수많은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요구한 것이고 저희도 마찬가지”라며 권 의원을 반박했다.

한때 시민대책회의·신자유연대간 고성도

15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15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연대해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건 ‘이태원 참사 49재’를 이틀 앞두고서였다.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맡은 배우 고(故)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씨는 14일 “저희 아이들 이름과 영정이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게 패륜이 아니다”며 “처음부터 정부에서 저희 유가족들을 모아서 같이 슬픔을 국민 여러분과 나눌 수 있게 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분향소를 설치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분향소에는 참사 희생자 158명 중 유족이 동의 의사를 밝힌 76명의 영정 사진이 안치됐고, 공개에 동의하지 않은 희생자 영정은 국화꽃 그림으로 대신했다.

 이날 한때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다음날 치를 49재를 위해 시설물을 설치하려 하자 신자유연대 회원들이 “이런 걸 왜 설치하느냐”며 고성을 지르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신자유연대는 삼각지역 인근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재명 대표 등에 대한 구속 촉구 집회를 주최한 곳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거주할 당시 진보 단체인 ‘서울의 소리’가 ‘양산 집회 비호 발언 규탄 집회·행진’ 기자회견을 열자 맞은편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49재 앞둔 보수 측의 맞불…충돌 우려

15일 오후,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이태원광장 옆에 극우 단체에서 맞불 집회를 벌이고 있다. 최서인 기자

15일 오후,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이태원광장 옆에 극우 단체에서 맞불 집회를 벌이고 있다. 최서인 기자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 직후 보수단체들이 추모 집회가 열릴 때마다 맞불집회를 놓으면서 진영 갈등이 고조되는 흐름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조심스레 나온다. 2014년 5월 일부 보수 단체는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 악용 세력 규탄 국민대회’ 등의 추모 맞불 집회를 열었다.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자 농성장 앞에서 폭식투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맞불 집회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양극화되고 이념화되고 쪼개지고 있는 추세의 부작용”이라며 “정부와 시민들이 평소에 더 많이 소통하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발적인 역할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순식간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순수한 추모의 의미가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정치권은 재발 방지를 위한 분석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참사 49일째인 16일 오후 6시 이태원역 앞 도로에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신자유연대 측도 마찬가지로 맞불 집회를 열 계획을 밝힌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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