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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노동개혁 올스톱…윤심·명심 '이중권력' 충돌, 정치 멈췄다 [vie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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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오후 국회 의장실에서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벌이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양측이 14일에도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169석 민주당 주도 단독 수정안의 통과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오후 국회 의장실에서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벌이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양측이 14일에도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169석 민주당 주도 단독 수정안의 통과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총 639조원 규모의 2023년도 정부 예산안의 야당 단독 수정안 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14일 “최종 협상안을 제출하라. ‘데드라인’은 분명히 오늘까지”라고 최후통첩을 날렸지만 정부·여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이 양보하지 않으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정부·여당이) 끝내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따르느라 민심(民心)을 저버린 채 국회 협상을 거부한다면, 민주당은 초부자 감세를 저지하고 국민 감세를 확대할 수 있도록 자체 수정안을 내일(15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저희가 최종 협상할 수 있는 건 없다”며 민주당 요구를 일축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이 정권을 교체해서 윤석열 정부를 일하도록 한 만큼, 첫 해는 (정부 요구를) 들어줘야 하지 않느냐”며 “민주당이 양보하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측이 국회 본회의(15일) 전날까지 접점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169석 민주당의 단독 수정안 가결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정기국회 기간을 넘긴 10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벌이는 모습. 양당 원내대표는 이날부터 닷새째 추가 협상을 벌였지만,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연합뉴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정기국회 기간을 넘긴 10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벌이는 모습. 양당 원내대표는 이날부터 닷새째 추가 협상을 벌였지만,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연합뉴스

1년 치 정부 예산이 야당 단독으로 수정되는 건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정부가 매년 9월 제출하는 예산안은 석달간 변화한 경제 상황과 여야 의원들의 요구를 반영해, 국회가 12월쯤 정부 동의를 받아 사업별 예산을 증·감액해 확정했다. 하지만 야당 단독으로 의결할 경우 사업별 예산 감액만 가능하다. 당연히 경기 변동이나 개별 사업에 대한 의회의 평가가 반영되기 힘들다. 예산 규모가 줄어들면 경기 회복에도 악재가 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예산안 협상이 파국으로 가는 상황에 대해 “강경 노선을 택한 윤석열 행정부와 169석 민주당이 장악한 입법부라는 ‘이중권력’이 타협 없이 정면충돌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내년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추진하는 노동·건강보험 개혁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강조하는 민생입법이 모조리 좌초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김성수(정치학) 한양대 교수는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성과를 막고, 윤 대통령은 야당 입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윤심(尹心)과 명심(明心·이 대표 의중)의 충돌로 정치가 멈췄다”고 말했다.

윤석열표 개혁 막는 ‘여소야대’…野 독자입법도 불가 

이중권력의 대치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최근 시동이 걸린 윤석열표 노동시장 개혁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발표한 권고문에 포함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개편 ▶임금체계 개편 ▶60세 이상 계속 고용 ▶통상임금·평균임금·주휴수당·최저임금 개편 등 개혁과제 대부분이 근로기준법 개정 사안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지난 5년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며 사실상 '문재인 케어' 폐기를 선언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지난 5년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며 사실상 '문재인 케어' 폐기를 선언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국회 환경노동위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이 제시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하려면 결국 국회에서 법 개정을 해야 한다”며 “하지만 30인 미만 사업장 ‘주 8시간 추가근로제’의 일몰(日沒) 유예도 논의 진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을지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0월 윤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해당 제도를 2년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법은 아직 환노위 법안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전날 윤 대통령이 ‘문재인 케어’ 폐기를 선언하며 화두를 띄운 건강보험 개혁도 건보 급여·자격 기준을 제외하곤 모두 국회 입법(건강보험법 개정)을 거쳐야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 민주당 의원은 “구체적인 정부 안을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의료비를 국민에게 전가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철회한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앞 도로에 주차된 화물차에서 한 조합원이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뉴시스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철회한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앞 도로에 주차된 화물차에서 한 조합원이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 계기가 된 ‘화물차 안전운임제’의 일몰 연장 문제가 대표적이다. 당초 민주당은 제도 상시화와 지원품목 확대를 추진했으나, 지난 9일 국회 국토위 단독처리 과정에선 정부안(품목 확대 없는 3년 일몰 연장)대로 수정해 의결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여당이 국회 법사위를 쥐고 있는 데다, 대통령이 언제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 않느냐”며“다수당이라도 제도 개선은 여야 합의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오랫동안 공언했던 ‘지역화폐 예산’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마련하는 예산안 수정안엔 지역화폐 예산을 넣을 수 없다. 예산 편성권을 쥐고 있는 정부의 동의 없이는, 국회가 단 1원도 증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묵(정치학) 한국외대 교수는 “정치라는 건 결국 각 정당이 서로 양보해서 타협해야 원하는 제도를 입법할 수 있다”며 “서로 일방적인 태도로 밀어붙이면 아무것도 입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와 다른 여소야대(與小野大)…“협치 도모해야”

지난 5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 두 번째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재석 293인 찬성 164인 반대 3인 기권 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5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 두 번째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재석 293인 찬성 164인 반대 3인 기권 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전문가들은 현재 정치 상황이 과거 여소야대(與小野大)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169석 단일한 거대 야당이 국회 모든 상임위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경우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말기와 문재인 정부 초기였던 20대 국회에선 국민의당이 굳건한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해 다당제에 가까운 여소야대였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도 처음엔 야당(한나라당)이 160석이 넘었으나,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잇따라 탈당해 지금과 같은 이중권력 정면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극한 대립의 해법을 두고선 여러가지 의견들이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정부 출범 직후 야당이 꺼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카드로 협치가 난관에 봉착했고,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법무장관 임명으로 대응하면서 상황이 악화했다”며 “양측이 서로를 ‘검찰 통치’와 ‘완박’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걸 중단하고 협치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준한(정치학) 인천대 교수는 “어쨌든 국정운영의 총책임자는 대통령인 만큼 ‘대통령 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며 “정부 국정과제 성공을 위해서도 윤 대통령이 야당과 직접 만나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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