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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이상렬의 시시각각

중동의 시진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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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렬 논설위원

이상렬 논설위원

“한국 경제에 제일 고마운 중국인은 마오쩌둥(毛澤東)”이란 말이 있다. 마오 통치시절 벌어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으로 중국 경제는 세계사에 남을 뒷걸음질을 했다. 그 시기 한국은 수출주도 성장 전략으로 ‘한강의 기적’을 써내려 갔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이란 강력한 경쟁자의 부재가 한국에 좋은 기회가 됐다는 분석은 틀린 것이 아니다. 1960~70년대 저임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이 세계시장에 뛰어들어 우리와 경쟁했다고 가정해 보면 아찔하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그 뒤 펼쳐진 한·중 수교 30년의 협력 모델도 한국이 경제적으로 중국을 크게 앞섰기에 가능했다. 중국이 한국의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분업구조가 한·중 양국의 ‘윈-윈(win-win)’으로 이어졌다.

6~7년 전부턴 기업인들 사이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너무 고맙다”는 얘기가 돌았다. 2017년 트럼프 집권 이후 중국에 가해진 전방위적 무역제재가 한국 경제에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었다. 중국이 산업구조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한·중 관계가 무역 파트너에서 경쟁자로 급변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대중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진단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경쟁자의 손발이 묶여 생기는 반사이익엔 한계가 있다. 한·중 경합의 단적인 성적표가 올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중 수출 부진(7개월 감소)과 무역적자 지속(6개월 적자)이다. 중국에서 먹히는 한국 제품이 줄어들고, 한국에서 팔리는 중국 제품이 늘어난 결과다.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배터리를 보면 알지 않나.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무역 흑자는 2019년부터 내리막이었고, 반도체를 제외하면 작년에 이미 무역 적자였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이 한국의 최대 라이벌 자리를 차지한 지 꽤 됐다.

한·중, 파트너에서 경쟁자로 전환
5000억 달러 네옴시티 경합 불가피
시-빈 살만 밀월 속 중국 약진 주목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아무리 초청해도 한국에는 오지 않는 그가 코로나19 이후 세 번째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를 택한 이유는 복합적일 것이다. 서방 분석가들은 미국의 봉쇄를 뚫으려는 중국의 노련한 외교와, 오랜 우방 미국을 자극하면서 중국을 끌어들이는 사우디의 대담한 전략에 초점을 맞췄다.

사우디는 시진핑을 극진히 맞았다. 사우디 전투기가 시 주석의 전용기를 호위했고,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지난 7월 사우디를 찾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어색한 주먹악수와는 격이 다른 환대였다.

시-빈 살만의 밀월은 한국 재계가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지난달 한국을 다녀간 빈 살만은 윤석열 대통령의 관저 1호 손님이었다. 한국 정부도 그를 특별 예우했다. 그의 방한 기간 중 300억 달러 규모의 협력 계약·양해각서(MOU)가 체결돼 우리 재계를 들뜨게 했다. 사막에 세워지는 미래 도시 ‘네옴시티’가 핵심이다. 총사업비만 5000억 달러. 네옴은 불황에 시달리는 한국 기업들의 엘도라도다. 모두들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한다. 그런데 시 주석과 빈 살만 왕세자가 서명, 발표한 수백억 달러 규모 MOU의 중심 사업도 네옴시티다. 스마트 도시, 통신, 건설, 인프라 등 상당 분야는 한국 기업들이 참여를 원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네옴 프로젝트의 천문학적 규모를 감안하면 한·중 양국의 협력 접점, 공생 공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양국 기업 간 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중동은 더 이상 70년대의 무주공산이 아니다. 시진핑이 직접 공을 들이고 있다. 빈 살만이 한국을 다녀갔다고 김칫국 마실 일이 아니다. 중국과의 경합을 넘어서야 한국 기업의 활로가 열린다. 글로벌 시장이 다 그렇다. 윤 정권은 물론 한국 경제의 승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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