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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공포의 50년 뒤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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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50년쯤 지난 다음에 다시 한번 태어나서 대한민국 국민이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 있고, 값지게 잘 사나 봤으면 좋겠습니다.” 102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7일 중앙일보의 독자 초청 강연에서 “알라딘 램프의 지니가 소원을 묻는다면”이라는 사회자 질문에 한 답이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그는 조국의 전진과 국민 행복을 기원했다.

출산율 1 아래의 유일한 나라 #2070년대 예상 성장률 -0.2% #소아과 붕괴 현상은 비극 서막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 중단을 알리는 가천대 길병원의 안내문. 길병원 홈페이지 캡처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 중단을 알리는 가천대 길병원의 안내문. 길병원 홈페이지 캡처

그다음 날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반세기 뒤의 세계를 전망하는 보고서('The Path to 2075')를 내놨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한국의 경제 규모는 2075년에 말레이시아·나이지리아에 뒤지며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으로 예측됐다(현재 12위). 2040년대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0.8%로 비교 대상 24개국 중 23위(일본이 0.7%로 24위)가 된다고 적혀 있다. 그 뒤 한국의 예상 경제성장률 수치는 끔찍하다. 2050년대 0.3%, 2060년대 -0.1%, 2070년대 -0.2%. 주요 국가 중 40년 뒤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진단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짐작하다시피 이 암울한 예측의 원인은 인구 절벽이다. 한국인이 게을러져서도 아니고, 전쟁이 나서도 아니다. 정부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70년 한국의 인구는 3766만 명이 된다(현재 5162만 명).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81로 전 세계 최하위다. 출산율 1 이하의 나라가 우리 말고는 없다. 이렇게 된 지 오래다. 인구가 감소하니 생산과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골드만삭스 보고서는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에서는 생산 인구가 부담할 은퇴자 복지 비용(의료비·연금 등)이 경제 성장을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초저출산이 초래하는 재앙은 이미 코앞에 다가왔다. 최근 주목받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 미달(지원율 16.6%)이 그중 하나다. 소아청소년 진료 파트가 있는 전국 66개 종합병원 중 55개 병원에 내년도 전공의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입원 진료를 포기한 병원도 나타났다. 환자 부모의 도를 넘는 무례함이 지원을 꺼리게 한다지만, 젊은 의사들의 소아과 외면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아동 인구 감소다. 1970년대 초 100만 명 수준이던 한국 신생아 수는 지난해 26만 명으로 50년 새 약 4분의 1이 됐다. 지난 5년간 문 닫은 소아과가 600개가 넘는다.

이 사태가 갑자기 닥친 것은 아니다. 3년 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70%대로 떨어지자 밤에 아픈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이 점차 사라지는, 의료 시스템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2년 전 지원율이 38%로 급감했을 때 의료계는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에 대한 보상 늘리기 등의 대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10여 년 전 일본이 택한 방법이다. 우리는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코로나 사태의 여파라고 믿고 싶어 했다. 38%에서 25%를 거쳐 지금의 16.6%에 이르렀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학생 감소에 따른 대학 고사, 징병제 존속 위기, 필수 노동력 부족 등이 충격의 현실 문 뒤에서 기다린다. 사실 우리 모두 문제의 근원을 안다. 결혼·출산 회피 또는 포기다. 올해의 통계청 의식조사로 확인된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주요 이유는 자금이 부족해서(28.7%), 고용 상태가 불안해서(14.6%), 출산·양육이 부담돼서(12.8%)였다. 자원 분배를 포함한 사회의 재생산 시스템이 정상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 사안과 관련한 정부 최고위직을 맡은 나경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인구 문제보다 여당의 유력 당권 주자로 언론에 더 자주 등장한다. 그는 저출산 원인으로 홀로 사는 연예인들 생활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을 지목해 문제의 본질을 모르거나 외면한다는 비난을 샀다. 위기가 무시되는 시간은 이렇게 계속 흐른다. 후대의 고통이 예약된 미래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