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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들고 나온 전장연…지하철은 삼각지역 그냥 지나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4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선전전에 서울교통공사가 무정차로 대응했다. 서울시가 지난 12일 전장연 시위로 열차 운행에 차질을 빚게 되면 시위가 진행되는 역사를 무정차 통과하겠다고 밝힌지 이틀만이다.

예고 이틀만에 첫 무정차 통과…열차 36분 지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 도중 사다리 반입 시도로 경찰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날 전장연 회원들의 지하철 내 사다리 반입 시도로 당고개 방면 열차 1대가 무정차 통과했다. 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 도중 사다리 반입 시도로 경찰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날 전장연 회원들의 지하철 내 사다리 반입 시도로 당고개 방면 열차 1대가 무정차 통과했다. 뉴스1

이날 오전 8시 30분 전장연은 4호선 삼각지역에서 ‘248일차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했다. 휠체어장애인 15명을 포함한 전장연 회원들은 삼각지역 4호선 승강장에서 출발해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서울지방경찰청까지 이동할 예정이었다. 박경석 공동대표를 포함한 10여 명이 먼저 열차에 올라탔고, 나머지 회원들도 뒤따라 타려던 중 사다리 반입을 두고 서울교통공사 측과 전장연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전장연 측은 철제 사다리를 목에 걸거나 철창 안에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시위를 진행해 왔다.

사다리 반입을 놓고 공사 측과 전장연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열차 운행이 약 7분 30초 가량 지연됐고 박경석 대표가 탄 열차가 먼저 출발했다. 공사 측은 남은 회원들로 인해 열차 지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오전 8시 44분쯤 신용산역에서 삼각지역으로 들어온 열차 1대를 무정차 통과시켰다. 공사 측은 SNS를 통해 “전장연이 운행방해 행위를 동반한 시위를 진행하며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 불편을 줄이고 안전을 확보하고자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한다”고 알렸다. 4호선은 오전 8시 52분 열차부터 다시 정상 운행되어 나머지 회원들은 사다리 없이 열차에 올랐고 먼저 출발한 박경석 대표 측과 충정로역에서 합류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과거에 사다리를 열차 문에 끼워서 열차 운행을 지연시킨 적이 많았기 때문에 열차가 지연될 개연성이 높다고 봤다”며 “또 승강장과 환승 통로에 사람들이 많아서 이동하기 어려워진 점 등 여러가지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날 전장연 시위로 인해 4호선은 삼각지역 기준으로 상선 36분, 하선 17분 지연됐다.

박 대표는 이날 열차에 올라 무정차 통과에 항의하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은 장애인 교육권·이동권 등을 보장하기 위한 예산인 ‘장애인 권리예산’이 15일 국회 통과를 압박해 왔다.

전장연 측은 지난 13일 “무정차 통과가 아니라 장애인 권리예산 통과가 진정한 후속 대책이다. 무정차 통과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며 ‘어차피 비장애인 열차는 장애인권리를 무정차로 지나가지 않았는가’라고 적힌 종이를 지하철역과 열차 이곳저곳에 붙였다.

첫 무정차 통과에 우려와 환영 교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시민들 사이에서는 무정차가 또다른 피해로 이어질 거라는 우려와 적극 대응에 대한 환영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대학생 김모(19)씨는 “무정차를 하면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원래 내리려던 곳에 못 내리고 또 피해를 볼 것 같다”며 “애초에 전장연 측에서 광장이나 국회 같은 다른 장소를 찾아서 시위를 해야지,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식의 시위는 잘못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26)씨는 “시민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정차 통과를 하는게 타당하다고 본다”면서도 “전장연 측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적어도 출근길에는 시위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서울경찰청 앞에서 전장연 활동가들과 경찰이 기자회견을 앞두고 사다리를 놓고 대치하고 있다. 최서인 기자

14일 오전, 서울경찰청 앞에서 전장연 활동가들과 경찰이 기자회견을 앞두고 사다리를 놓고 대치하고 있다. 최서인 기자

오전 10시 서울경찰청 앞으로 이동한 전장연 측은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다리 사용을 두고 경찰과 다시 한 번 마찰을 빚었다. 전장연 측은 사다리를 들고 “사다리 반입이 안되는 이유가 뭐냐”며 항의했고 경찰은 “이거 가지고 시위하신 적 많지 않냐”며 맞섰다.

이날 기자회견은 집회 과정에서 빚어진 마찰에 대해 경찰 측에 항의하기 위해 열렸다. 지난해 11월 17일, 한 경찰관이 집회 중 박 대표가 들고 있는 연막탄을 빼앗으려는 과정에서 박 대표가 뒤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병원에 이송됐다. 전장연 측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지난 13일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헌법상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장연은 15일, 16일에도 이날에 이어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오는 15일 ‘장애인 권리예산’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다음해 1월 2일에 선전전이 아닌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재개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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