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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스스로 참전했다"…'야권 빅2' 동시조사? 검찰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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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이 전직 대통령과 거대 야당 대표를 함께 수사 선상에 올릴 것인지를 두고 쉽지 않은 저울질을 시작했다. 지난 9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을 구속 기소하면서다. 대장동 개발 특혜 및 불법 대선 자금 의혹 등과 관련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조사는 이미 시기와 방법의 문제가 된 지 오래지만,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필요성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29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29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文 '참전'에 검찰도 당황… "갑자기 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원래 논외였다. 서 전 실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지난 1일까지만 해도 검찰 관계자는 “서 전 실장은 국가안보실 비롯 국방부, 해경 업무수행에 있어 최종결정권자”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날 문 전 대통령이 “국방부, 해경, 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그 보고를 (내가) 최종 승인한 것”이라고 맞불을 놓은 뒤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문 전 대통령은 “부디 도를 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법조계 일각에선 “문 전 대통령이 당시 청와대 의사결정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지만, 검찰 수사라인에선 “문 대통령이 스스로 승인 주체라고 밝힌 이상 사실 확인 정도의 조사 없이 수사를 마무리하기 애매해졌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 전 대통령의 발언 하루 뒤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서 전 실장이 그간 압수수색 등에서 파악되지 않았던 ‘대통령 보고문서’를 제시한 것도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할 필요성을 키운 요인이다.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 수사에 필요하면 조사한다”(검찰 관계자)는 원론적 입장에 따르더라도 선택에 변화가 생길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재명 조사는 '상수'… "文 조사는 윤 대통령 의중에 달려" 

문제는 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를 동시에 수사할 경우 생기는 정치적 부담이다. 검찰은 '서해 사건' 관련 혐의를 받는 서 전 실장과 '대장동 개발 특혜' 혐의의 정 전 실장을 같은 날 구속기소했다. 정 전 실장에 대해선 이 대표와 ‘정치적 동지’라고 표현했다.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공범의 다른 표현”(특수부 검사출신 변호사)라는 해석과 함께 한 달 내로 이 대표에 대한 소환 조사가 시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동시 조사를 둘러싼 법조계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검찰 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정치적 고려를 하면 할수록 검찰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그걸 알고 있어 정공법을 택할 것”이라 말했다. 검찰 고위급을 지낸 인사도 “한 개의 사건에 두 사람이 연루돼 있다면 한 명만 수사하는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각각 다른 사건이지 않나. 혐의가 나오면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 내부에선 “서 전 실장 구속기소만으로도 수사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는 자체 평가도 적지 않다”(중간 간부급 검사)는 말도 나온다.

다만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여부에 윤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정치권과 법조계의 공통된 관측이다. 서해 사건에 관여하는 복수의 검사들에게서도 “전직 대통령 조사는 검찰 지휘부를 넘어 대통령실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고문단 격려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고문단 격려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 대통령 선택에도 다양한 변수가 고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최근 윤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 등에 “법대로 하자”는 원칙론으로 돌파하며 지지율을 40%대까지 끌어올렸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검찰에 그린라이트를 줄 것”(검사장 출신 변호사)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하지만, 이는 최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야권 인사를 대거 포함해 ‘국민 화합’ 콘셉트의 성탄절 특별사면 논의 등 극한 대립을 완화하려는 여권의 움직임과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는 점이 문제다. 익명을 원한 여권 인사는 “아직 대통령의 의중이 전달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여권 내부에서도 강·온 기류가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민주당의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에 대한 수사 장기화로 인한 민주당 내 친이재명계와 친문재인계의 균열이 깊어지고 있는 터라서다. 한 친이재명계 의원은 “문 전 대통령마저 조사대상이 되면 검찰공화국의 정치 보복에 대한 단일 대오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친문재인계 재선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선택에 대한 검찰의 공세와 이 대표 개인 비리에 대한 수사에는 분리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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