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9년전 盧와 쏙 빼닮았다…타협없던 尹의 화물연대 파업 대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슈분석]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화물차들에 붙어있던 파업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화물차들에 붙어있던 파업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간 최장 집단운송거부, 한해 두 차례 파업, 강경대응, 백기투항’.

 지난 9일 막을 내린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는 이런 기록들로 정리할 수 있다. 화물연대가 최장기간 집단운송거부(파업)를 벌였지만, 윤석열 정부의 타협 없는 강경대응 기조에 사실상 얻은 것 없이 빈손으로 백기투항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현 정부의 화물연대 파업 대응과정을 살펴보면 19년 전과 쏙 빼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이다. 판박이였던 정부의 대응 과정을 짚어봤다.

 정권 초 어설픈 파업 대응 논란  

 화물연대가 사상 첫 집단운송거부에 들어간 건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석달가량 된 2003년 5월이었다. 화물연대는 ▶운송비 인상 ▶경유세 인하 ▶지입제 철폐 ▶노동 3권 보장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확대 등 12가지를 요구했다.

 당시 화물연대는 대형트럭을 주요 항만이나 공장 출입문 등에 세워놓고는 차량 키를 뽑고 자리를 뜨는 방식으로 물류를 마비시켰다. 애초 화물연대의 파업 경고를 개인사업자들의 과도한 요구라며 가볍게 여겼던 정부로선 제대로 허를 찔린 셈이었다.

 전국적으로 피해가 확산하면서 정부는 결국 화물연대의 12가지 요구 중 11가지를 ‘수용’ 또는 ‘대체로 수용’ 형태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정부가 노동계의 집단행동에 밀려 원칙을 접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이 “이 정도밖에 대응을 못 하느냐”고 화를 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2003년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가운데)과 노무현 대통령(오른쪽). 중앙포토

2003년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가운데)과 노무현 대통령(오른쪽). 중앙포토

 지난 6월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벌였던 화물연대의 파업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정부는 노정 협상 끝에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 논의’에 합의했고 운송거부는 끝났다. 정부가 화물연대의 요구를 대체로 수용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이미 산업계는 1조 6000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본 뒤였다. 이후 법과 원칙을 강조하던 윤석열 정부가 파업에 기대 이하의 대처를 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왔다. 집권 뒤 첫 운송거부에 둘 다 판정패한 분위기였다.

 한해 두 번째 파업엔 강경대응

 2003년 5월 첫 파업에서 기대 이상의 전리품을 챙긴 화물연대는 그해 8월 운송료 일괄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두 번째 운송거부에 돌입했다. 이때는 정부 분위기가 달랐다. ‘선 복귀 후 대화’를 내세우며 타협 없는 강경대응 기조를 고수했다.

 불법파업 등을 주도한 혐의로 화물연대 지도부에 대한 검거에 나섰고, 현장에도 공권력을 투입해 강하게 대처했다. 결국 16일간 이어졌던 운송거부는 화물연대가 얻은 것 없이 업무 복귀를 선언하면서 끝이 났다. 이른바 ‘백기투항’이었다.

 현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화물연대가 6월에 이어 11월 24일부터 ‘안전운임 영구 시행과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다시 운송거부에 나서자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강하게 맞섰다. 먼저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 관련 업무개시명령을 심의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 관련 업무개시명령을 심의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게다가 지난달 29일에는 시멘트 분야에 대해 사상 첫 업무개시 명령까지 발동했다. 2004년 도입된 뒤 실제로 활용되는 건 처음이었다. 이어 지난 8일에는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에도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다.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개시 명령을 어기면 ▶1차 30일 운행 정지 ▶2차 자격 취소의 행정처분이 내려지고, 고발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게 돼 화물차주나 운송사로선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강경 대응에 역시 16일간 이어졌던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는 얻은 것 없이 빈손으로 종료됐다. 노무현 정부의 강경대응과 화물연대의 백기투항이 윤석열 정부에서 재현된 셈이다.

 노통, 업무개시명령 도입..윤통은?  

 화물연대의 첫 파업에서 곤욕을 치른 노무현 정부는 2004년 화물차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정부 관계자는 “향후 또 있을지도 모를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에 맞설 정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노동계에서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법 개정에 성공했고, 이를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그 위력이 어느 정도 확인됐다. 이제 관심은 현 정부에선 어떤 후속 대책을 마련하느냐에 쏠리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안전운임제 일몰제 3년 연장안에 대한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안전운임제 일몰제 3년 연장안에 대한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당초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돌입 직전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제안했던 당정은 입장을 바꿔 ‘원점 재검토’를 언급하고 있다. 화물연대가 당정의 제안을 걷어차고 파업에 들어간 이상 해당 제안은 무효가 됐다는 것이다. 대통령실도 강경한 입장이다.

 3년 기한으로 2020년 도입된 안전운임은 법 개정이 안 되면 연말에 자동 폐지된다. 정부로선 현행 안전운임처럼 정부가 화물운임을 강제하는 경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유례가 없는 데다 안전운임 위반 시 화주를 처벌하는 규정도 너무 과하다는 지적이 많아 제도를 유지하기도 부담이 적지 않다.

 게다가 안전운임 도입 취지와 달리 오히려 교통사고와 사망자 수가 증가하는 등 교통안전 개선에 별 효과가 없다는 분석결과까지 나오면서 고민이 깊다. 하지만 일부에선 안전운임제의 효과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만큼 전격적인 폐지는 섣부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