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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기업도 빚 쌓인다, 단기부채 207조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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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모바일 게임 개발사 넷마블은 지난해 3분기만 해도 현금 유동성이 좋았다. 1년 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유동자산은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부채를 다 갚고도 6600억원이 남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소셜카지노 게임사 스핀엑스 지분 인수에 나서면서 유동성이 크게 악화했다. 인수 자금 용도로 조달한 1조6000억원 이상의 달러화 부채가 달러 가치 상승으로 불어난 탓이다. 이 여파로 넷마블의 유동비율은 지난해 3분기 164.4%에서 올 3분기 41.1%로 뚝 떨어졌다.

유가증권 시장(코스피)에 상장된 석유화학업체 롯데케미칼은 올 들어 현금 유동성이 급격히 나빠졌다. 중·장기 사업 기반 확보 차원에서 지난 10월 배터리 소재 업체 일진머티리얼즈 경영권(지분 53.3%)을 2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대규모 자금 출혈이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악화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관계사 롯데건설에 6000억여원을 지원했다. 본업으로 돈이라도 잘 벌면 다행이지만, 올 초부터 닥친 고유가로 원료비가 늘면서 2분기부터 영업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지난달 10일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하며 앞으로 신용등급(현재 AA+)을 하향 조정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넷마블 유동비율 1년 새 164%→41%…운수·건설 등은 더 심각

이런 내용은 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올해 3분기 코스피 상장사(비금융) 자금 안정성 조사’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자금 안정성 조사는 올해 3분기 보고서(9월 말 기준)를 제출한 454개 상장사의 유동비율을 전수조사한 것이다. 유동비율은 1년 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유동자산을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부채인 유동부채로 나눈 지표다.

조사 대상 기업의 9월 말 유동부채는 총 1005조7000억원에 달했다. 한 해 전 같은 기간보다 1.3배(207조4000억원) 늘어난 수치다. 유동부채는 빠르게 늘었지만, 유동자산은 같은 기간 1158조6000억원에서 1417조6000억원으로 1.2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유동비율 238.8%에서 221.3%로 17.5%포인트 하락했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유동비율이 100% 아래로 떨어지면 단기부채를 갚을 만큼 현금 유동성이 충분치 않다는 의미”라며 “고환율·고금리·고유가에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종별로는 운수·건설·서비스업 등 비제조업 상장사의 유동성 악화가 특히 빠르게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제조업 상장사(152곳) 유동비율은 한 해 전 같은 기간 대비 92.3%포인트 하락한 184%를 기록했다. 제조업 상장사(302곳) 유동비율이 7.9%포인트 하락해 211%를 기록한 것과 비견된다.

유동성이 좋아진 기업은 줄고 나빠진 기업만 늘어나는 추세도 확인된다. 유동비율이 200%를 넘긴 기업은 19개 줄어든 129개사에 그쳤고, 200%를 밑도는 기업은 19개사 증가한 325개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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