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중국, 말보다 행동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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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6일 오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강당. 방청석을 채운 200여 명 앞에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가 들어섰다. '한.중 관계와 북핵 문제'를 주제로 특강을 하는 자리였다.

진행을 맡은 정종욱 국제대학원 초빙교수가 "'민감한 말씀'은 안 하셔도 된다"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주중 한국대사를 지낸 전직 외교관답게 외국 외교관을 배려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려 했다.

평양의 김일성대학에 유학해 북한식 어투가 남아 있는 닝 대사가 수교 14년간 급증한 중국과 한국 간 교역량, 상호 방문자 연간 500만 명, 북핵 6자회담에서 중국의 역할 등과 관련된 통계를 인용해 가며 강연을 시작할 때만 해도 특강이 외교적 레토릭(수사) 수준에서 싱겁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중반을 넘어 닝 대사가 "양국 간에 민감한 문제도 있다"며 '속에 있는 말'을 꺼내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그의 주장은 대략 이랬다. ① 중국사회과학원이 홈페이지에 올린 연구 계획을 마치 '동북공정' 연구 결과가 나온 것처럼 (한국방송이) 보도해 오해를 빚었다. ② 낙후한 지린(吉林)성 경제 개발이 진행될 뿐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 공정'이란 실체가 없다. ③ 고구려사 등 학술논쟁이 영토분쟁으로 비화해서는 안 된다. ④ 북한을 중국의 동북 제4성(省)으로 만들 거란 주장은 근거가 없다.

그의 발언 중에서 백두산을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린성 정부가 단독 등재를 추진, 한국민의 강한 반발을 산 것을 언급한 대목이 주목받았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만일 등재한다면 주변국과 협의해 공동으로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책임 있는 중국 당국자가 백두산을 둘러싼 갈등을 풀기 위해 공동 등재 의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본지 11월 17일자 1면).

닝 대사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가 민감한 화제에 속내를 털어놓고 의사소통을 시도한 노력만큼은 평가해줄 만하다. "양국 관계가 훼손되면 어느 쪽도 이익을 못 본다"는 그의 발언에선 '전략적 이해'를 공유할 수준으로 진전된 한.중 관계가 탈선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읽혔다.

이제 닝 대사의 언약이 실천으로 옮겨지는 일만 남았다. 양국 관계의 발전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장세정 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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