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나를 살린 건 그래도 미술이었다” 70주년 맞는 박영사 안종만 회장의 미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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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독자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는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리는 중앙일보 독자 서비스입니다.

‘갤러리박영’에 전시된 박영사의 역사와 함께 나란히 선 안종만 회장과 안수연 대표. 부녀는 박영사 70주년을 맞아 ‘넓게 인재를 양성한다’는 고 안원옥 회장의 창업 이념을 기리고자 「두레문화, 박영70」특별전을 오는 29일부터‘갤러리박영’에서 엽니다.

‘갤러리박영’에 전시된 박영사의 역사와 함께 나란히 선 안종만 회장과 안수연 대표. 부녀는 박영사 70주년을 맞아 ‘넓게 인재를 양성한다’는 고 안원옥 회장의 창업 이념을 기리고자 「두레문화, 박영70」특별전을 오는 29일부터‘갤러리박영’에서 엽니다.

저는 사진 찍는 이동춘입니다.

파주출판단지에 1호 갤러리, 갤러리박영을 만든 출판사 박영사가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습니다. 70년 전이면 1952년이니 6·25전쟁 중에 창립한 겁니다. 피난지인 부산시 중구 부평동에서 도서출판 대중문화사를 설립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죠. 1954년에 대중문화사를 박영사로 이름을 바꾼 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영사는 대학교재 및 전문학술서적을 출판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법학 · 정치학 · 행정학 · 사회학 · 경제학· 경영학 · 경찰 · 군사학을 비롯해 인문학 · 교육학 · 심리학 · 상담학 · 사회복지학 · 반려동물학 · 검인정교과서(중 · 고등학교)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도 발간했으니 웬만한 사람이면 박영사에서 출간한 책은 한반쯤 봤을 터입니다. 지난 70년간 발간한 책이 8000종이 넘을 정도니까요.

박영사는 출판사업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지원 사업에도 열정을 쏟아왔습니다. 창업자인 안원옥 회장이 운보 김기창, 의재 허백련, 소전 손재형 선생들과 가까이 지내며 생활이 어려운 작가들을 후원해온 게 시작이었습니다.

창업자를 이어 아들인 안종만 현 회장은 파주출판단지에 ‘갤러리박영’을 만들어 작가 지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작가를 지원했고요. 현재 딸인 안수연 대표가 신진작가 지원 사업을 이어받았습니다.

결국 3대에 걸쳐 예술가 지원 사업을 하며 널리 인재를 양성하는 ‘박영’ 정신을 잇고 있네요. 이 시대의 사진작가인 저로서는 여러모로 고맙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마움을 담아 창업자 안원옥 회장의 유지를 이은 안종만 회장과 안수연 대표를 인생 사진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사진작가 이동춘 올림


안종만 회장은 70년간 박영사가 발간한 8000여종의 책 중 ‘경제학대사전’을 으뜸으로 꼽습니다.

안종만 회장은 70년간 박영사가 발간한 8000여종의 책 중 ‘경제학대사전’을 으뜸으로 꼽습니다.

파주 출판단지의 ‘갤러리박영’에서 안종만 회장과 안수연 대표를 만났습니다. 사실 파주 출판단지와 ‘갤러리박영’은 안종만 회장에게 깊은 의미가 담긴 곳입니다. 그 깊은 의미만큼의 고난도 겪은 곳이고요. 그러니 만남의 장소로는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먼저 안종만 회장에게 박영사 창립 당시의 이야기를 요청했습니다. 전쟁 통에, 그것도 피란지 부산에서 출판사를 만들었으니 남다른 뒷얘기가 있을 듯했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죠. 말이 다섯 살이지 생일이 12월 말이니까 만으로 세 살 때죠. 그러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부산으로 피난 가서 아주 혼란할 때 아버님이 출판사를 만드신 건 압니다. 아버님은 전주 사범을 나오시고 9년간 교편생활을 했어요. 워낙 책을 좋아하셨고, 가르치는 일을 하셨으니 난리 통에도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뜨셨나 봅니다. 당시엔 이름이 ‘대중문화사’였어요. 그러다 1954년도에 ‘넓을 박(博)’‘꽃부리 영(英)’을 써서 박영사(博英社)로 이름을 바꾸셨죠.”

‘넓게 인재를 양성한다’는 의미의 ‘박영(博英)’은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씨앗이 움튼 겁니다. 사느냐, 죽느냐가 지상과제인 난리 통에 시작한 박영사가 70년이 된 것이고요. 창업자 안원옥 회장의 아들인 안종만 회장은 대학 3학년 때부터 출판사 일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버님 건강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준비 중이던 유학을 포기하고 제가 3학년 때 와서 아르바이트했죠. 그러다 정식으로 시작한 건 1971년부터입니다.”
“1971년부터면 50년이 넘으셨네요. 처음 시작할 때 아버님이 혹독하게 가르쳤다는 일화가 유명하던데요.”
“엄하게 저를 가르쳤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더 감사하죠. 한번은  제주도 출장 갈 때 딱 계산해서 꼭 쓸 돈만 계산해 주셨어요. 당시 목포에서 제주를 가는 배를 탔는데 내리자마자 구토가 심해 병원에서 주사 맞고 그랬죠. 그래도 제주시를 싹 뒤져 제주서점과 거래를 다 텄죠. 아버님이 저를 혹독하게 키우셨고 사랑해서 그러셨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겠습니다.”
'갤러리박영'루프로 올라가는 길목 난간에서 부녀가 포즈를 취했습니다. 건물은 파주의 자연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갤러리박영'루프로 올라가는 길목 난간에서 부녀가 포즈를 취했습니다. 건물은 파주의 자연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 허허벌판 파주에 출판단지를 만들겠다며 도모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그거는 상당히 기가 막힌 얘기인데…. 하하. 아버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젊은 출판인들 7, 8명이 영국에 갔어요. 열화당 이기용 대표가 주동해서 한길사 김언호 대표 등과 같이 간 거죠. 영국 런던에서 한 2시간 더 가면 웨일스 지방이 있는데 ‘헤이 온 와이(Hay-On-Wye)’라는 책 마을이 있어요. 낙후돼 가던 탄광촌이 한 해 50만 명이 찾는 세계적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더라고요. 거기에서 우리도 한번 이런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의기투합한 겁니다. 그때 제가 40대 초반이었으니 젊다면 젊었죠.”
“그렇게 시작한 일이 순탄했던가요?”
“그럴 리가요. 온갖 고생 다 했죠. 여기가 토지개발공사 땅이었는데 전쟁 터진다며 파주 쪽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더군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땅이라 혹을 떼려고 했는지 우리더러 가져가라고 합디다. 당시 돈이 없으니 우리는 조합을 만들어 시작했죠. 고생한 거는 말도 못해요. 지금도 여기 들어오면 눈물과 기쁨이 섞인 애환이 먼저 떠오릅니다.”
“이른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신 건데요. 그런 터에 여기에 쇼핑몰 이체는 왜 만드신 겁니까?”
“그것도 기가 막힌 이야기죠.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간다며 저더러 정신병자라 불렀어요. 사실 파주 출판단지를 북 시티로 활성화하기 위한 기반시설이 필요했어요. 2000년에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에 간 적 있어요. 가서 종이를 막 구겨 놓은 것 같은 건물을 봤죠, 살다 살다 이런 건물은 처음 이었어요. 프랭크 게리가 지은 건물인데 이것을 보려 250만의 관광객이 몰려들더라고요. 건축물 하나가 사람을 모으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걸 본 겁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설계를 세계적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에게 맡기며 이체를 만든 겁니다.”
“그걸 짓다가 큰 곤란을 겼었다면서요.”
“곤란 정도가 아니라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겼죠. 하하. 그랬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고, 밥 먹고 사니 이만하면 됐죠. 사실 출판 단지라는 문화 컨셉에 좋은 건축물이 들어오면 금상첨화라는 착각, 착각은 아니고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에 안 맞아서 그런 고통을 받은 것일 뿐이죠. 언젠가 다들 알아줄 테죠. 하하.”
'갤러리박영'의 입구엔 김원근 작가가 직접 설치한 작품이 있습니다. 갤러리 입구를 지키고 있는 그 모습, 안종만 회장의 도전 정신과 무척 닮았습니다.

'갤러리박영'의 입구엔 김원근 작가가 직접 설치한 작품이 있습니다. 갤러리 입구를 지키고 있는 그 모습, 안종만 회장의 도전 정신과 무척 닮았습니다.

“갤러리박영을 여기에 만든 것도 또 하나의 미친 짓이 아니었던가요?”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물려준 통장으로 ‘박영장학문화재단’을 만들었어요. 30년 전이었죠. 이 갤러리는 거기서 태동한 겁니다. 아버님은 동양화에 심취했던 분이었어요. 아버님 따라다니면서 제가 단원, 오원, 겸재, 심전 등의 그림을 많이 봤습니다. 인사동을 다니면서 그때 공부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이게 어쩌면 아버님께 배운 ‘헤일로 이펙트’ 즉 ‘후광 효과’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작가 레지던시를 하자고 생각했던 겁니다. 작가를 위한 장학제도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부녀가 '갤러리박영'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주형작가의 “사구가보이는풍경”앞에 섰습니다. 안종만 회장의 예술 사랑은 인사동을 다니면서 고 안원옥 회장에게 배운 ‘후광 효과’에 기인한다고 했습니다. 안수연 대표 또한 그 ‘후광 효과’로 인해 3대째 예술 지원 사업을 잇고 있는 겁니다.

부녀가 '갤러리박영'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주형작가의 “사구가보이는풍경”앞에 섰습니다. 안종만 회장의 예술 사랑은 인사동을 다니면서 고 안원옥 회장에게 배운 ‘후광 효과’에 기인한다고 했습니다. 안수연 대표 또한 그 ‘후광 효과’로 인해 3대째 예술 지원 사업을 잇고 있는 겁니다.

“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이룬 성과는 있습니까?”
“‘레지던시 프로젝트’ ‘신진작가공모전’ ‘박영작가공모전’ 등을 통해 지원받은 작가가 100여명에 이릅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죠. 제가 덕을 보려 한 건 아니지만, 보람된 건 사실입니다.”

안종만 회장은 출판뿐만 아니라 출판문화 인프라를 위한 투자는 물론 작가지원 사업까지 모두 박영정신을 잇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허허벌판에 출판문화단지를 만들고, 그 출판문화단지를 유지하고 활성화 시키기 위한 방편이 ‘이체’와 ‘갤러리박영’이었던 겁니다.

할아버지를 이어 3대째 '박영'정신을 잇는 안수연대표에게 갤러리의 현실을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갤러리에 들어와서 일하라고 하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현실을 보게 되었어요. 아버님이 너무 훌륭한 일을 하신 건데 ‘출판계의 이단아’로 불리시고, 갤러리 또한 환영받지 못한 시작이었더라고요. 참 어려운 현실의 벽이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처음 만드신 그 뜻이 실현될 수 있게 해야겠다는 게 급선무였어요. 아버님이 꿈꿨듯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하고, 강연도 하는 그런 복합 문화 공간 갤러리로 자리매김하여 파주 출판문화단지의 랜드마크가 되게끔 애쓰고 있습니다.”
매년 유망한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갤러리박영’의 작가공모전시 'BAKYOUNG THE SHIFT'(이하 SHIFT)는 올해로 7기를 맞이했습니다. 현재 2022년 SHIFT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3부 ‘Reverse’ 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매년 유망한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갤러리박영’의 작가공모전시 'BAKYOUNG THE SHIFT'(이하 SHIFT)는 올해로 7기를 맞이했습니다. 현재 2022년 SHIFT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3부 ‘Reverse’ 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습니까?”
“도서출판 박영사 70주년, 갤러리박영 15주년을 맞아 특별전을 준비했습니다. 오는 12일부터 시작되는 전시는 박영사 70년을 압축하는 키워드로 ‘두레 정신’을 선정했습니다. 이로써 국가와 민족 공동체를 위해 박영사가 힘 써왔던 정신을 기리고자 합니다. 할아버지 안원옥 회장께서 컬렉션한 작품도 3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청전 이상범, 의제 허백련, 심전 안중식 등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아울러 안종만 회장의 북 컬렉션과 박영사 책으로 제작된 작품도 선보일 겁니다.”
이동춘 사진작가가 박영사 발행 도서를 촬영하여 만든 「두레문화, 박영70전」포스터. 전시는 12월 29일부터 2023년 2월 15일까지.

이동춘 사진작가가 박영사 발행 도서를 촬영하여 만든 「두레문화, 박영70전」포스터. 전시는 12월 29일부터 2023년 2월 15일까지.

“아버님께서 예전에 너무 힘드실 때 소장품을 팔아 박영사를 지켜냈다고 하셨던데….”
“제가 2009년에 아카이빙 정리를 한 적 있어요. 진짜 별의별 걸 다 수집하셨더라고요. 그 바람에 우리가 어떤 소장품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사실 올해 아버님 소장품을 정리해서 한 권의 단행본을 엮으려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던 작품들이 다 없어진 거예요. 알아봤더니 갤러리와 박영사, 이체를 지켜내기 위해 소장품을 파신 거예요.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 아버님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싶었고요. 아버님은 “나를 살린 건 그래도 미술이었다”고 하시지만,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이때 또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남한테 맨날 퍼주기만 하고, 사주기만 하고, 작가들 어려웠을 때 도와주기만 했는데 남은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요. 작품은 없지만, 그 작가들과 아버님과의 관계는 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담아보자는 아이디어를 아버님께 연초에 말씀드렸더니 가만히 들으시다가“ 수연아, 고맙다” 딱 그러시더라고요.”

안 회장은 누구도 헤아려주지 않던 당신의 심정을 헤아려 준 딸이 고마웠던 겁니다.
안 회장에게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70주년이 되었고, 앞으로 80주년을 향해 나아갈 텐데 박영사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으면 합니까?”
“넓게 인재를 양성하는 박영사의 정체성, 그것을 잃지 않은 박영사로 존재했으면 합니다. 그것이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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