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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주의 없는 외국인 선거권…한동훈 "국익과 상식" 칼 겨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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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7년간 유지돼 온 외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 폐지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에 따른 파열음도 커지고 있다.

한 장관은 5일 중앙일보에 “공직선거법상 외국인투표권 조항에 상호주의를 반영하는 것은 국익과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장관은 “외국인투표권 조항 도입 당시에도 홍준표 의원 등이 상호주의 의견을 제시했으나 반영되지 않은 채 입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참정권을 상호주의에 따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느냐”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질의에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우리나라는 3년 이상 된 (18세 이상)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데 해외 거주 우리나라 국민은 대부분 선거권이 없는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주제도 개편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회신했다. 이 같은 방향에 장관의 의지가 실렸음을 재확인한 셈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2월 1일 오전 출근 중이다. 당시 한 장관은 기자들을 만나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주고 있는 현행 제도에 대해 개선 방침을 밝혔다. 해외 주요 국가 대부분이 한국인 영주권자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2월 1일 오전 출근 중이다. 당시 한 장관은 기자들을 만나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주고 있는 현행 제도에 대해 개선 방침을 밝혔다. 해외 주요 국가 대부분이 한국인 영주권자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뉴스1

한동훈 “외국인투표권에 상호주의는 국익과 상식에 부합”

 국내에서 상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선 두 갈래 길이 있다. 가장 확실한 길은 주요 해외 국가처럼 외국인 영주권자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다만 이는 국회 입법을 통해 이룰 수 있다.

두 번째 길은 외국인 영주권자의 권리 유지 조건을 강화해 선거권을 위축시키는 쪽으로 출입국관리법을 고치는 것이다. 역시 입법 사안이지만 법무부에 법안을 발의할 권한이 있다. 한동훈 법무부가 검토하는 길은 후자다. 구체적으로 외국인 영주권자의 국내 의무 체류기간 요건을 도입하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외국인 영주권자가 특정 기간 이상 해외에 체류 시 영주권을 상실하도록 해 투표권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대부분의 해외 주요 국가는 외국인 영주권자에 대해 국내 의무 체류기간 요건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선 1년 이상 해외에 체류하면 사전에 재입국허가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 영주권을 상실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이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준 건 2005년부터다. 앞서 2001년 여·야는 한국에 오래 머문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주기로 합의했다. ‘세계화라는 시대적 조류에 부합하고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구현한다’는 명분이었다. 외국인일지라도 지방세를 내고 자치 법령에 따르는 만큼 권리를 부여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맞다는 논리였다.

이후 2005년 국회는 60만 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재일동포들이 일본 지방선거권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명분으로 추가했고, 결국 이 법안은 여·야 합의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우리나라가 먼저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준 뒤 일본 정부를 설득하자는 전략이었다.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8년 6월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초등학교 교육문화관 투표소에서 나이지리아 국적의 우구오마 오빈나 사무엘(52)씨가 투표하고 있다.    한국 영주권을 받은 지 3년이 경과하고 자치단체의 외국인등록대장에 등재된 외국인은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사무엘씨는 2000년 한국에 왔고 2008년쯤 영주권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사무엘씨가 지방선거권을 행사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연합뉴스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8년 6월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초등학교 교육문화관 투표소에서 나이지리아 국적의 우구오마 오빈나 사무엘(52)씨가 투표하고 있다. 한국 영주권을 받은 지 3년이 경과하고 자치단체의 외국인등록대장에 등재된 외국인은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사무엘씨는 2000년 한국에 왔고 2008년쯤 영주권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사무엘씨가 지방선거권을 행사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연합뉴스

文청와대는 현행제도 유지 입장…민주당 장악 국회도 비슷

반면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현재 국회 재적의원 299석 가운데 169석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하는 가운데, 2020년 중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될 당시 문재인 청와대는 “지역주민으로서 지역사회의 기초적인 정치 의사 형성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민주주의 보편성을 구현하려는 취지”라며 현행 제도를 유지하겠단 뜻을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방선거는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으로 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살고 있는 사람의 의사를 반영하는 게 옳다”라며 “상호주의를 적용할 이유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굳이 상호주의를 적용할 거라면 외교력을 발휘해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 장관의 주장이 실익이 없는 정치적 어젠더라는 평가도 있다. 전국지방선거에서 외국인 투표율은 2010년(제5회) 35.2%에서도 계속 하락해 지난 6월 8회 지방선거에선 13.3%를 기록했다. 유권자 12만 7623명 가운데 1만7000명가량이 투표했다는 이야기다. 선거법을 연구해 온 한 정치학 교수는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은 인식 부족 등을 이유로 이미 형해화되어 가고 있다”며 “굳이 폐지여론을 부추겨 진영 갈등을 심화시키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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