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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월드컵 16강 진출, 기적 아닌 피·땀·눈물의 성취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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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22 카타르월드컵 H조 최종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2-1로 역전승했다. 김현동 기자

2022 카타르월드컵 H조 최종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2-1로 역전승했다. 김현동 기자

패스·크로스·드리블 등 각자 역할 충실한 ‘빌드업’  

정부, 국회, 노조 등 사회 각 부문도 ‘팀워크’ 절실

한국이 극적인 역전골로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같은 시간대 열린 H조 경기에서 가나가 우루과이의 발목을 잡아 준 행운도 뒤따랐지만, BTS의 노래 제목처럼 선수들의 ‘피·땀·눈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특히 피파 랭킹 9위의 포르투갈을 2대1로 무너뜨린 것은 선수들의 실력 덕분이었다.

가나와의 경기 패배 후 스포츠 분석 업체가 제시한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9%였다. 그러나 안정환 MBC 해설위원의 말처럼 선수들의 희생과 노력이 100%를 만들었다. 12년 만의 16강 진출이 단지 기적만이 아닌 이유다.

‘뻥축구’로 조롱받던 한국 축구는 2002년 4강 진출 이후 성장을 거듭했다. 2010년 첫 원정 16강을 달성했고, 손흥민 등 세계적 선수들을 배출했다. 4년간 국가대표팀은 파울루 벤투 감독과 함께 다양한 패스와 크로스로 공간을 창출하는 ‘빌드업’ 축구를 만들어 나갔다.

축구 통계 사이트 풋몹에 따르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평균 점유율은 53.5%로 13위, 유효슈팅은 경기당 4.3회로 11위다. 정확한 크로스는 경기당 7.3회로 무려 2위다. 실제 우루과이전에선 경기 전반을 지배했고, 가나전에선 22개의 슈팅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빌드업’이 성공한 것은 선수들이 각자 위치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줬기 때문이다.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측면 공수를 책임진 김문환·김진수, 머리 부상에도 붕대 투혼을 벌인 황인범, 절뚝거리며 필사의 수비를 펼친 김민재 등 모든 선수가 제 몫을 다했다.

그중 캡틴 손흥민의 헌신이 돋보인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의 월드스타지만 대표팀에서의 역할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맏형으로 팀 전체를 조율하고, 늘 2~3명의 수비수를 끌고 다니며 공간을 만든다. 포르투갈전 역전골 당시만 해도 그의 주변엔 7명의 수비수가 있었다.

특히 안와골절 수술 한 달 만에 전 경기 풀타임을 뛴 투혼은 선수들에게 깊은 투지를 불어넣었다. 70여m 드리블에 이은 마지막 패스는 역전 드라마의 정점이었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순간에, 쇄도하는 황희찬을 보고 수비수 다리 사이로 공을 밀어 넣은 침착함은 진정한 월드클래스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선수들의 활약을 보며 대한민국도 하나가 됐다. 영하의 날씨에도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추위를 잊은 채 선수들을 응원했다. 여야 정치권도 모처럼 같은 목소리를 냈다. 조직력과 팀워크가 빛난 대표팀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도 ‘빌드업’이 필요하다. 정부, 국회, 기업, 노조 등이 제 위치에서 자기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 국가 발전도 이뤄진다. 수준 높아진 축구만큼이나 우리 사회도 한층 더 성숙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