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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속전속결 김광현 영입해 대기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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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호 26면

[스포츠 오디세이] 민경삼 SSG 랜더스 대표

창단 2년 만에 2022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SSG 랜더스 선수단이 정용진 구단주를 행가레치는 대형 사진 앞에 선 민경삼 대표. 그는 “청라지구 돔 구장 건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돔 구장이 들어서면 유통과 스포츠를 아우르는 큰 판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창단 2년 만에 2022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SSG 랜더스 선수단이 정용진 구단주를 행가레치는 대형 사진 앞에 선 민경삼 대표. 그는 “청라지구 돔 구장 건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돔 구장이 들어서면 유통과 스포츠를 아우르는 큰 판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개막일부터 종료일까지 1위를 지킨 뒤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하는 걸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라고 부른다.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5번 밖에 없었다.

출범 41년째를 맞은 한국 프로야구 KBO리그에서 이 기록이 나왔다. 인천 연고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지난해 창단한 SSG 랜더스가 주인공이다. 키움 히어로즈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SSG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자리를 박차고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선수들과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다. 창단 2년 만에 이룬 완벽한 우승. ‘신세계 유니버스’를 이루겠다는 그의 꿈이 야구단을 통해 한층 선명해졌다.

NC 다이노스 대표를 역임한 이태일 한국체대 교수는 “정 부회장은 야구단을 모기업 비즈니스를 펼쳐내는 플랫폼이자 테스트베드로 포지셔닝했다. 한국형 프로야구단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구단주의 명을 받들어 ‘랜더스 영토 확장’ 선봉에 선 야전사령관이 민경삼 SSG 랜더스 대표다. 선수·매니저·단장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그는 2년 만에 신생 구단에 트로피를 안겼다. 지난달 25일, 인천 문학경기장 내 구단 사무실에서 민 대표를 만났다.

정용진 부회장은 소통하는 ‘관종’

올해 3월 16일 김광현 선수의 입단식에서 민경삼 대표(왼쪽)가 유니폼을 입혀주고 있다. [뉴스1]

올해 3월 16일 김광현 선수의 입단식에서 민경삼 대표(왼쪽)가 유니폼을 입혀주고 있다. [뉴스1]

‘퍼펙트 우승’을 축하한다. 대기록을 세우는 과정에서 고비는 없었나.
“개막 10연승을 하면서 선수들이 ‘우승에 도전할 수 있겠다’ 정도를 넘어선 뭔가를 느꼈던 것 같다. 압박감도 있었고 고비도 있었다. 막판 2.5게임차까지 쫓기면서 감독이 무리수를 두는 것도 보였다. ‘와이어 투 와이어는 하다 보면 얻는 거지 목표는 아니잖나’라고 선수단을 다독였다.”
SSG가 인수할 당시 SK 대표였는데, 구단주와 어떤 얘기를 했나.
“부회장님이 내게 ‘대표님, 저 야구단 진짜 인수하고 싶었습니다. 야구단 팬이 이마트·신세계 고객이 되고, 이 고객이 우리 랜더스 팬이 될 겁니다. 대표님은 성적만 내세요. 마케팅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면서 돔 구장에 대한 플랜과 3D 설계도를 보여주셨다. ‘아, 이분은 진짜로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단을 통해 세상에 없던 일을 하려는구나’ 싶었다.”
SSG 창단에 맞춰 지난해 3월 추신수 선수를 영입했는데.
“그전부터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추신수는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서 우리가 1번으로 뽑았다. 일단 찜을 해 놓자는 생각이었다. 당시 부상으로 마이너리그에 있던 추신수를 만나러 갔다. 밤 11시에 개인운동을 마친 그를 초밥집에 데려갔는데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몸도 눈빛도 장난이 아니었다. 한국 가자는 말도 못 꺼내고 ‘당신 성공할 것 같아’ 격려하고 초밥만 사 주고 왔다.”
“우승에 목말랐다”고 했던 추신수(왼쪽)가 동료와 한국시리즈 챔피언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우승에 목말랐다”고 했던 추신수(왼쪽)가 동료와 한국시리즈 챔피언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어쨌든 SSG에서 품었는데.
“결과는 추신수도 럭키, 민경삼도 럭키, 신세계도 럭키였다. 연봉 27억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추신수는 국내 복귀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 통 큰 결단이 필요했기에 부회장님께 ‘신생팀 스타 마케팅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라고 강권했다. 다행히 빠른 결정을 내려 주셨다.”
추신수가 팀 내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선수들이 추신수라는 사람과 같이 뛰는 것 자체에 엄청난 프라이드를 느끼더라. 자신들이 꾸던 꿈을 먼저 이뤘으니까. 그의 루틴을 유심히 지켜보고 따라하는 게 보였다. 추신수는 오후 6시 경기일에도 오전 10시에 나와서 충분히 몸을 풀고 준비를 한다. ‘저렇게 해야 메이저리거가 되는구나’ 느끼면서 후배들이 자극을 받더라. 추신수도 성인이 된 후 이루지 못한 우승의 한을 풀었고.”

랜더스는 지난해 0.5경기 차로 6위가 돼 가을야구를 못했다. 화룡점정이 필요했다. 그 ‘용의 눈’이 메이저리거 김광현이었다. 민 대표는 “SK 와이번스 인수 가격이 1350억원인데 350억이 부동산(강화도 퓨처스필드) 값이다. 그러면 구단 인수액을 1500억이라 생각하고 김광현 영입에 150억을 쓰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광현은 올해 3월, KBO리그 역대 최고액인 4년 151억에 SSG 유니폼을 입었다.

영입 과정의 에피소드는?
“김광현이 오는 순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고 봤다. 한국시리즈 1,4,7차전을 책임질 수 있는 에이스 카드니까.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잘 던지고 있었는데 마침 메이저리그 파업으로 기회가 생겼다. 정 부회장님과 밤 10시 반까지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속전속결로 끝냈다. ‘잡으세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하시더라.”

흥 많은 야구장 문화 잘 살려나가야

한국시리즈 MVP 김강민(40)을 포함해 베테랑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도 맞지만 팀이 노령화되면 성장하지 못한다. 물러날 때가 됐다는 판단이 서면 ‘경비를 대 줄테니 미국 가서 공부하고 다시 우리 팀에 오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참들이 자기관리도 잘 하고 팀워크도 좋다. 리빌딩 한다고 고참들 몰아내서 성공한 걸 본 적이 없다. 리빌딩이 아니라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김원형 감독은 SSG에서 뽑은 사람이 아닌데.
“김 감독은 SK 레전드 출신이다. 영리하고 연구하는 지도자여서 ‘김원형 사단’을 구축하도록 힘을 실어줬다. 2군은 외국인 코치 중심으로 꾸리고 시스템을 바꿨다. 아침 6시 반에 숙소를 나와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훈련하고 그 후에는 개인 연습을 하도록 한다. 밤늦게까지 돌아다닐 수가 없다.”
한국시리즈 MVP 김강민과 정용진 구단주가 대형 우승 깃발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시리즈 MVP 김강민과 정용진 구단주가 대형 우승 깃발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용진 구단주는 한국시리즈 시상식 무대에서 “우리는 KBO 14개 개인상 수상자가 하나도 없는 우승팀이지만 1등이 있다. 바로 홈 관중 동원력이다”고 말했다. 팬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내용이었는데, 미리 준비한 멘트를 즉석에서 터뜨린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단주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는 바람에 주인공인 선수들이 묻혔다는 비판도 있었다.

정 부회장이 솔직히 좀 관종(관심종자) 같다는 사람들도 있다.
“관종 맞다(웃음). 그런데 관종이 꼭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그만큼 소통이 된다는 얘기 아닌가. 보통 구단주들은 높은 곳에 계시고, 큰 경기 있을 때만 오셔서 악수 하고 사진 찍고 가신다. 우리도 그게 편하다. 그런데 부회장님은 젊은 선수들과 스킨십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걸 워낙 좋아한다. 또 그만큼 선수들을 챙긴다. 올해 50억 들여 리모델링한 경기장의 라커룸은 사우나·웨이트장·안마의자 등을 갖춘 메이저리그 수준이다.”
홈 관중 1위 비결은?
“첫째가 성적, 둘째가 편안함이다. 문학경기장은 주차하고 뺄 때 시간이 너무 걸린다. 구단 직원들이 빨간 신호봉 들고 주차관리에 나섰고, 인천시와 남동경찰서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모범운전자들의 도움도 받았다. 스타벅스·노브랜드가 입점해 있고, 삼겹살 존에 반려동물 존까지 갖춘 야구장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이런 편리함도 유통그룹이 모체인 우리 구단만의 강점이다.”
한국 야구만의 독특한 마케팅이나 팬 서비스가 필요한데.
“우리는 흥이 많고 그것을 발산하는 문화가 야구장에 정착했다. 치어리더가 춤을 추고 관중이 떼창을 하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롯데 팬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응원하고, 인천 팬들도 8회 ‘연안부두’가 흘러나오면 휴대폰 조명 켜고 노래 부르고 난리가 아니다. 이런 문화를 잘 유지하면서 새롭게 업데이트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민경삼 1963년 충북 청주 출생. 신일고- 고려대를 거쳐 프로야구 MBC 청룡(LG 트윈스 전신)에 입단했다. 발이 빠르고 센스가 뛰어난 유격수였으나 타격이 좋지 않아 김재박의 백업이나 대주자 전문으로 뛰었다. 90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였고, 94년 우승 때는 매니저였다. 2003년 SK로 옮긴 뒤 김성근·힐만 감독 등과 함께 SK 왕조를 세웠다. 2020년 KBO리그 선수 출신 최초로 야구단 대표가 됐다. 다양한 경험과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춘 전문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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