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찬 감독 “김연경 귀환은 로또, 내 인생 다시없을 기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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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호 26면

[스포츠 오디세이] 새 출발하는 흥국생명

“김연경과 같은 팀에서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로또”라고 말한 권순찬 흥국생명 감독이 경기도 용인에 있는 구단 체육관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김연경과 같은 팀에서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로또”라고 말한 권순찬 흥국생명 감독이 경기도 용인에 있는 구단 체육관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프로배구 V리그 2022~23 시즌이 22일 개막한다. 남자부 7개 팀, 여자부 7개 팀이 6개월간 레이스를 펼친다. 남자배구의 들러리였던 여자배구가 인기와 흥행에서 남자를 넘어선 건 오래 전 일이다. 그 배후에는 ‘김연경 효과’가 있다. 세계 최고 기량과 인기를 지닌 김연경 덕분에 여자배구 팬층이 넓어졌고, 김연경이 이끄는 대표팀이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다른 선수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이는 국내 리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김연경(34·192㎝)은 지난해 도쿄 올림픽(4강)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센터 양효진(현대건설·190㎝)과 김수지(IBK기업은행·188㎝)도 태극 유니폼을 반납한 여자대표팀은 국제대회 16연패라는 참담한 기록을 남겼다. 그럼에도 한국배구연맹(KOVO)이 올 시즌 흥행을 자신하는 이유는 김연경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해외에서 뛰다 처음 복귀한 2020~21 시즌 이재영·다영 쌍둥이가 학폭 논란으로 빠진 가운데도 흥국생명을 정규리그 2위와 챔피언결정전(GS칼텍스에 3전3패)까지 이끌었다.

김연경·옐레나, 외국인 선수 두 명 효과

1년 만에 국내에 복귀해 지난 8월 열린 V리그 컵대회에서 리시브를 하고 있는 김연경. [뉴스1]

1년 만에 국내에 복귀해 지난 8월 열린 V리그 컵대회에서 리시브를 하고 있는 김연경. [뉴스1]

지난 시즌 6위에 그친 흥국생명은 8년간 팀을 이끈 박미희 감독과 작별하고 남자배구 KB손해보험 감독을 역임한 권순찬 감독에게 지난 5월 지휘봉을 맡겼다. 그리고 7월에 김연경이 복귀했다. 지난 17일 경기도 용인의 흥국생명 훈련장에서 만난 권 감독은 “로또를 맞았다”고 했다. “김연경 같은 월드 스타와 함께 팀을 만들어가는 기회가 내 지도자 인생에서 다시 있겠나. ‘김연경 보유팀 감독’이라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것마저 즐기고 싶다”며 웃었다.

권 감독은 지난 시즌 흥국생명에 대해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이 없고 선수들이 대부분 어리다 보니까 이기고는 싶은데 게임을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할지 모르고, 그냥 막 열심히 하는 모습이었다”고 평가했다.

김연경이 복귀한 이후 팀은 완전히 달라졌다. “여자 선수들은 연습경기나 훈련할 때 100% 힘을 다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훈련이 길고 힘들기 때문에 체력을 안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연경은 연습경기 공격 할 때도 전력을 다해 공을 때리고, 수비 한 번도 쉽게 하는 적이 없다. 무슨 일을 하든 다 계획을 갖고 있고 그걸 100% 실행한다. 그걸 보면서 우리 선수들이 많이 배운다”고 권 감독은 귀띔했다.

2006년 4월 2일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도로공사를 꺾고 우승한 흥국생명 선수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6년 4월 2일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도로공사를 꺾고 우승한 흥국생명 선수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선수 출신으로 흥국생명 배구단 매니저를 맡고 있는 김예솔 씨는 “연경 언니는 월드 스타답지 않게 털털하고 후배들을 잘 챙긴다. 다만 코트에 들어가서는 매 순간 집중하라고 매섭게 다그친다. 훈련이나 경기가 끝난 뒤에는 플레이 장면을 되짚어주면서 ‘이럴 땐 이렇게 했어야 한다’고 얘기해 준다. 후배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김연경은 “선수들이 스스로 잘해주고 있기 때문에 딱히 강조하는 부분은 없다. ‘같이 잘해 보자’ 이야기 하면서 시즌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흥국생명은 외국인선수로 지난 시즌 KGC인삼공사에서 뛰었던 옐레나(25·196㎝)를 영입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출신인 옐레나는 김연경과 한 팀에서 뛴다는 소식에 감격했다고 한다.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훈련에도 열심이다. 권순찬 감독은 “옐레나는 승부욕이 강해 실수를 하면 자신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그런 모습은 동료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했더니 고치겠다고 했다. 우리 팀은 세터의 토스가 빠른 대신 높이가 좀 낮아질 수 있는데 그것도 잘 따라오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현했다. 김연경이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 옐레나가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에 포진하면 흥국생명은 외국인선수 두 명을 기용한 효과를 누리게 된다.

흥국생명 배구단 연혁

흥국생명 배구단 연혁

흥국생명은 지난해 창단 50주년을 맞았다. 1971년 해체된 동일방직을 인수해 태광산업 여자배구단이 탄생했다. 1991년 흥국생명 여자배구단으로 이름을 바꿨고, 2005년 프로 팀인 핑크스파이더스로 변신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여자배구 팀이다. 70년대에는 심순옥·이순복 등 국가대표를 배출했고 75년 전국대회 3관왕에 올랐다. 80년대 170연승 대기록을 세우며 독주한 미도파에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팀이기도 했다. 2020년 흥국생명에 입단한 세터 박혜진의 어머니인 미들블로커(센터) 남순옥도 87년 태광산업에 입단해 그 해 신인상을 탔다.

태광산업 배구단 구단주였던 고(故)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자의 배구 사랑은 남달랐다. 그는 운영난으로 해체 위기에 빠졌던 동일방직 배구단을 인수한 뒤 선수들에게 “시집가기 전까지는 모두 내 딸이다”라며 지원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은퇴 후에는 모기업에서 직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2005년 슈퍼 루키 김연경이 입단하면서 흥국생명은 날개를 달았다. 2005~06, 2006~07 시즌 연속 V리그 정규리그-챔피언전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2007~08 정규리그, 2008~09 챔피언전 트로피도 흥국생명 차지였다. 김연경이 뛴 네 시즌 동안 흥국생명은 챔피언전 3회, 정규리그 3회 우승을 달성했다.

창업주 “시집가기 전엔 모두 내 딸” 애정

김연경을 월드 스타의 길로 이끈 해외 진출에도 구단의 ‘통 큰 양보’가 있었다. 원래 6시즌을 뛰어야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릴 수 있었지만 흥국생명은 ‘전력의 50%’인 김연경을 네 시즌이 끝난 뒤 일본 JT마블러스로 보내줬다. 이 과정에서 마블러스 측이 김연경 임대 수용 조건으로 반다이라 마모루 감독을 흥국생명 사령탑에 앉힐 것을 요구했다. 흥국생명은 이 조건도 수용해 2009년부터 3년간 마모루를 구단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모셨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당시 “김연경이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게 본인과 한국 배구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2020년 복귀할 때까지 그의 등번호(10번)를 임시 영구결번으로 비워뒀다. 이에 대해 김연경은 “회장님이 배려해 주신 덕분에 많은 걸 배우고 돌아왔다. 감사하고 올 시즌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성적 보너스를 받으면 선수단 숙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늘 선물을 하곤 했다. 그는 “배구단을 위해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작지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배구 여제는 마음 씀씀이도 월드 클래스다.

현대건설·GS칼텍스 2강…‘김호철 매직’ 기업은행 다크호스

지난 19일 열린 V리그 여자부 미디어데이에서 7개 팀 감독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열린 V리그 여자부 미디어데이에서 7개 팀 감독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권순찬 흥국생명 감독에게 올 시즌 여자배구 판도를 전망해 달라고 했다. 그는 “정말 모르겠다. 6개 팀과 모두 연습경기를 해 봤는데 전력이 거의 비슷비슷했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현대건설과 GS칼텍스의 양강 구도를 전망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 V리그 여자부 최초 15연승을 기록하며 독주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챔피언결정전이 취소되는 바람에 아쉽게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양효진·이다현·황민경 등 주축 선수들이 건재하고 야스민도 위력이 여전하다. 가장 안정적인 전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 GS칼텍스는 지난 8월 컵대회에서 신예 선수들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해 자신감에 차 있다.

IBK기업은행과 흥국생명은 다크호스로 꼽힌다. 지난 시즌 초반 최하위를 헤매다 ‘김호철 매직’에 힘입어 극적으로 반등한 IBK기업은행은 올 시즌 더 빨라진 배구를 보여주고 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가세로 천군만마를 얻었다. 이정철 전 IBK기업은행 감독은 “김연경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흥국생명은 전혀 다른 팀이 된다”고 말했다.

권순찬 흥국생명 감독은 “일단 봄배구(플레이오프)는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토너먼트 올라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파란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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