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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업무개시명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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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심새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새롬 정치부 기자

심새롬 정치부 기자

업무개시명령은 정부가 파업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법적 수단이다. ‘국가경제에 심대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 발령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첫해인 지난 2003년 12월 22일 여야가 16대 국회에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업무개시명령 조항을 신설했다. 2주일간의 화물운송 거부로 5400억원어치 산업피해가 발생한 그해 5월 화물연대 파업이 계기였다.

당시 파업은 전국 항만과 내륙컨테이너기지(ICD)를 마비시켰다. 국내 컨테이너 화물의 80%를 처리하는 부산항에 정부가 군(軍) 수송 차량까지 투입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수출대란이 현실화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막대한 경제적 피해는 물론 국제 신인도까지 하락하고 있다”며 강도 높은 처벌이 포함된 법 개정을 추진한 이유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동의했다. 국회 회의록을 살펴보니 재석 177인 중 찬성 167인, 반대 7인, 기권 3인으로 법안 개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한나라당이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을 제치고 과반 의석수를 차지했던 여소야대 시절이다. 그래도 찬성률 94.4%. 이견 없는 합의 처리였다.

화물차주의 업무개시명령 거부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 화물운송 종사자격과 운수사업등록 취소·정지 처분을 내리는 현행법은 그렇게 탄생했다. 당시 극소수 반대·기권표 중 대부분(반대 5표, 기권 2표)을 야당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냈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여권에서는 3인을 제외한 재석의원 전원이 화물차 업무개시명령제에 찬성했다. “대화로 문제를 풀되 위법 행위에 대해 법 집행을 엄정히 하라”는 게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 지시였다.

19년이 지난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정부는 파업을 실시할 수 있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한다. 그렇지만 불법은 안 된다”며 국무회의에서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의결했다. “업무개시명령은 내용과 절차가 모호하고 위헌성이 높아 2004년 도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위헌성이 큰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하라”는 더불어민주당 논평이 과거를 잊은 자기 부정으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