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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최고금리 인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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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경제부 기자

최현주 경제부 기자

1990년대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던 ‘미아리 텍사스촌’은 대표적인 홍등가였다.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취객들을 끄는 풍경이 일상인 곳이었다. 2000년 1월 김강자 서울 종암서장은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 일대 집중 단속에 나섰다.

2004년 9월엔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지역별 대표 홍등가 단속이 이뤄졌다. 홍등가는 슬럼화하거나 재개발됐다. 그런데 되레 집창촌과 주택·업무지역의 경계는 무너졌다. 내쫓긴 성매매 종사자들이 주택가나 업무 지역으로 침투했다.

수법은 더 은밀하고 대담해졌다. 오피스텔을 임대해 성매매 장소로 쓰는 속칭 ‘오피’가 대표적이다. 상가를 마사지숍으로 꾸미는 ‘샤워실’부터 ‘안마방’까지 은밀한 성매매 형태가 등장했다. 단속은 더 어려워졌다.

오피스텔이나 상가에서 성매매 업소를 찾아내려면 고객인 척 위장하지 않으면 사실상 단속할 방법이 없다. 찾아내도 처벌이 쉽지 않다. ‘오피’에서 성매매 남녀를 적발해도 애인이라고 주장하면 단속 명분이 없다. 결국 홍등가는 사라졌지만, 성매매는 없애지 못했다.

요즘 ‘제3금융’ 시장이 그렇다. 제도권 금융에서는 대출이 막힌 저소득·저신용자에겐 대부업체나 전당포 같은 이른바 제3금융이 마지노선이다. 이곳에서마저 대출을 받지 못하면 ‘신체 포기 각서’를 쓰고 돈을 빌린다는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대출 난민’이라 불리는 금융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려는 정부 조치가 되레 이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2002년 66%였던 법정 최고 금리는 2016년 27.9%에서 현재 20%까지 내렸다. 대부업체 이용자(개인)는 4년 새 23% 감소해 지난해 9만7000명 선이다. 그러나 금감원에 들어온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는 2년 사이 두 배 늘었다. 수익이 없어진 대부업체는 문을 닫고 있다. 결국 제3금융 시장은 고사하고 있지만, 대출 난민의 이자 부담은 줄지 않았다.

금융당국도 부작용을 알고, 지난달 ‘우수 대부업자’ 자격 유지 조건을 완화하는 등 대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최고 금리 인하의 역설’을 막기 위해 최고금리를 기준금리와 연동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책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금융당국이 신중히 생각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