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44살에 리시브 1위… 현대캐피탈 여오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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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 플레잉코치. 사진 한국배구연맹

여오현 플레잉코치. 사진 한국배구연맹

마흔 네 살의 여오현은 아직도 쌩쌩하다. '리시브 킹' 여오현이 현대캐피탈의 3연승을 이끌었다.

여오현은 V리그 유일의 플레잉코치다. 하지만 '코치'보다는 '플레잉'에 방점이 찍혀 있다. 스물 한 살 어린 국가대표 박경민과 투 리베로 시스템을 소화하고 있다. 상대팀 서브일 땐 여오현이 들어가 주로 리시브를 받는다.

1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도 여오현은 상대 서브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23개의 서브를 받는 동안 범실은 1개, 정확은 14개를 기록하면서 효율 56.5%를 찍었다. 현대캐피탈도 3-1 승리를 거두고 3연승을 달렸다.

경기 뒤 만난 여오현 코치는 "선수들이 잘 해주니까 힘이 나는 것 같다. 옆에서 광인이가 힘들텐데 잘 도와주는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이어 "구단이나 감독님, 코칭스태프에게 고맙다. 저를 관리해주고, 믿고 써주신다. 그래서 나도 준비를 꾸준히 잘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경민이도 잘 한다. 서로 역할 분담이 잘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최태웅 감독은 "같은 세대에 운동했는데 정말 대견스럽다. 어떻게 저렇게 회춘한 건가 싶을 정도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서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또 한편으로는 한국 배구로 봤을 때는 '여오현이란 선수를 빨리 넘어야 할 인재가 있어야 하는데…'란 생각도 든다. 아직은 못 넘을 거 같다"고 웃었다.

사실 박경민도 리시브가 좋다. 지난 시즌 리시브 효율 1위가 박경민(51.82%)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1위는 여오현이다. 2018~19시즌 이후 4년 만에 리시브 1위를 노리고 있다. 최태웅 감독이 여오현을 쓰는 이유다.

최태웅 감독은 "외국인 선수가 아웃사이드 히터로 왔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쪽에서 경험이 있는 여오현 코치를 선택했다. 여 코치가 한 번에 에이스로 점수를 내주는 미스가 경민이보다 적다. 그래서 시즌 들어가기 전에(여오현을 리시브할 때 기용하는)선택을 내렸다. 나중엔 여오현 코치의 체력 관리를 위해서 경민이도 리시브를 하러 들어갔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은 오레올과 전광인, 그리고 여오현까지 세 명이 리시브를 받는다. 상대 서브는 후위공격이 좋은 오레올에게 많이 향한다. 그래서 여오현과 전광인이 최대한 오레올의 범위꺼지 커버하려고 한다. 여오현은 "오레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시프트 아닌 시프트도 가동한다. 선수간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올 시즌 리시브 효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캐피탈 여오현. 사진 한국배구연맹

올 시즌 리시브 효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캐피탈 여오현. 사진 한국배구연맹

여오현은 남자부에서 유일하게 프로 원년(2005시즌)부터 뛰고 있는 선수다. 현대캐피탈에서 뛴 지도 벌써 10년째다. 플레잉코치가 됐지만, 여전히 코트를 밟고 있다. 최태웅 현대캐피탈은 우리 나이 마흔 다섯 살까지 뛰라는 '45세 프로젝트'를 여 코치에게 권했고, 드디어 한 달 뒤면 그 꿈이 이뤄진다.

플레잉코치는 사실 묘한 보직이다. 코치도, 선수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 코치는 "비디오 분석 때는 참여하지만, 선수들끼리 미팅을 가질 때는 빠져준다"며 "플레잉코치를 5년 넘게 하다 보니 예전엔 형이라고 부르던 선수들도 코치님이라고 부른다. 오레올도 '코치님, 코치님'이라고 한다. 이제는 나도 그게 편하다"고 웃었다.

현대캐피탈은 최근 부진했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팀을 다졌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은 대한항공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2018~19시즌 우승을 차지했을 때의 최태웅 감독과 여오현. 김상선 기자

2018~19시즌 우승을 차지했을 때의 최태웅 감독과 여오현. 김상선 기자

여오현은 "2년 동안 우리 선수들이 두들겨맞았잖아요. 맷집도 좋아졌고, 멘털적으로도 성장했다. 이번 시즌도 많이 업그레이드됐다기보다는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긴 것 같다. 성장할 선수들이라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베테랑 선수가 부진하면 팀 분위기는 더 나빠질 수 있다. 늘 끝맺음을 생각하며 달려왔지만, 여전히 치열하게 노력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여오현은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도움이 되기 위해 항상 준비를 한다"며 "(내가)못하는데 구단에서 쓸 수는 없다. 프로다. 자기가 한 만큼, 노력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힘들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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