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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손실'에 밀어붙인 지하철 인력감축…하루 만에 접었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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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0시쯤 서울교통공사와 양대노조 간 합의안이 타결됐다. 왼쪽부터 명순필 서울교통공사 노조위원장,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 김철관 교섭 대표위원. 사진 서울교통공사=연합뉴스

1일 0시쯤 서울교통공사와 양대노조 간 합의안이 타결됐다. 왼쪽부터 명순필 서울교통공사 노조위원장,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 김철관 교섭 대표위원. 사진 서울교통공사=연합뉴스

서울교통공사 노사는 1일 0시 임금·단체 협약(임단협) 최종 합의했다. 여기에는 사측이 ‘인력 감축안’을 접은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간 사측은 인력 감축안을 고수했고 막판에 시행을 미루는 유보안을 내긴 했지만, 파업을 막진 못했다. 전날 하루 파업 영향으로 시민은 한파 속에 퇴근길 큰 불편을 겪었는데, 한쪽에선 “이럴 거면 뭐하러 인력 감축안을 고집해 파업을 불렀냐”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공사 측은 내년에 감축안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교통공사 올해 적자 1조1000억원 추정 

교통공사에 따르면 인력 감축안이 나온 배경엔 ‘1조’ 적자가 있다. 교통공사 당기순손실은 2019년 5865억원, 2020년 1조1137억원, 2021년 9644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3년간 한 해 평균 8882억원이다. 올해도 1조1000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25개 자치구 평균 예산(7468억원·2021년)보다 많은 규모다. 부채는 지난해 기준 6조6072억원에 달한다.

서울교통공사 측이 제시한 재정적자 주요 원인. [서울교통공사 자료 캡처]

서울교통공사 측이 제시한 재정적자 주요 원인. [서울교통공사 자료 캡처]

교통공사는 적자 원인으로 ▶낮은 기본운임(1250원) ▶고령화에 따른 무임수송 손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승객 감소를 꼽는다. 지하철 기본운임은 7년째 동결되다 보니 수송원가(1988원)보다 낮다. 여기에 박원순 시장 때인 2018년 교통공사가 협력사 등 무기 계약직 직원 1285명을 공사 일반직(정규직)으로 전환한 것도 작용했다.

교통공사 올바른노조(일명 공사 청년노조)는 “당시 교통공사는 기존 협력·계약업체 소속이던 승강안전문 관리나 구내식당·이발사·목욕탕·매점 종사자를 무리하게 일반직으로 전환하면서 재정은 더욱 악화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노사 양측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서울교통공사=뉴스1

서울교통공사에서 노사 양측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서울교통공사=뉴스1

자구책으로 나온 인력 감축안  

이에 교통공사는 인력 감축안을 꺼냈다. 지난해 마련한 ‘경영혁신 추진계획’에 따라 직원 1539명(정원의 10%수준)을 줄이겠다고 했다. 단 직원을 정리해고가 아닌 감축 대상자를 대부분 자회사 소속 등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취임 후 ‘교통공사 재정난 해결을 위한 (서울시) 지원 전제조건’으로 공사가 자체적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1539명 감축 인원 목표를 잡은 것도 기존 1000명 감축 방안으론 부족하다는 서울시 의중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노조는 “‘지난해 재정위기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강제하지 않겠다’는 노사 합의를 뒤집었다”며 반발했다.

팽팽했던 그간의 협상과정 

교통공사 노사 양측은 지난 9월부터 5차례 본교섭과 9차례 실무교섭을 했다. 하지만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지난달 29일 5차 본교섭은 끝내 결렬됐다. 하루 뒤인 30일 오전 올바른노조를 뺀 민주노총·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은 총파업에 돌입했다. 교통공사는 파업 첫날 오전 노조에 다시 대화를 요청했고, 같은 날 오후 8시 양측은 협상장에 마주 앉았다. 1일 자정 최종 타결에 이르렀다.

양측은 지난해 노사 합의에 따라 구조조정을 강제하지 않고 안전 관련 인력도 일부 충원키로 했다. 또 동결했던 임금은 지난해 총인건비 대비 1.4% 올리기로 합의했다.

30일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의 파업여파로 퇴근길 대란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30일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의 파업여파로 퇴근길 대란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인력 감축안 접은 교통공사 왜 

교통공사가 인력 감축안을 하루 만에 갑자기 접은 이유는 ‘시민 안전’에 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파 경보가 내려질 정도로 추웠던 지난달 30일 강남역 등 지하철역에서 퇴근길 대란이 빚어졌다.

노사협상에 나섰던 한 공사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출퇴근 시간 때만이라도 열차 운행을 지연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그런데도 추운 날씨에 승객이 많이 몰려 승차 지연이 발생해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력 감축안에 대해선 “폐지하거나 유보하는 게 아닌 상황 변화에 따라 내년에 새롭게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1일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협상에 합의하며 서울 지하철은 이날 첫차부터 정상운행한다.   단 코레일과 공동 운영하는 1, 3, 4호선은 전국철도노조 준법투쟁이 이어지며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1호선 시청역을 오가는 시민들. 연합뉴스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1일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협상에 합의하며 서울 지하철은 이날 첫차부터 정상운행한다. 단 코레일과 공동 운영하는 1, 3, 4호선은 전국철도노조 준법투쟁이 이어지며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1호선 시청역을 오가는 시민들. 연합뉴스

타결안 놓고 엇갈린 노조 평가 

이번 협상 내용과 관련해 교통공사 내 노조 입장은 엇갈린다. 민노총·한노총 소속 ‘연합노조’는 “대승적 타협이었다”며 긍정적인 평을 내렸다. 반면 올바른노조는 ‘안전 인력 충원’ 조항에 대해 “그동안 1·2 노조가 주장했던 대로 ‘보안관’을 늘리는 건 반대한다”며 “근태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보안관을 늘릴 게 아니라 시민 안전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역 직원을 충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상범 교통공사 사장은 “단 하루긴 했지만 노사협상이 파업으로 이어지며 시민께 불편하게 한 점 사과드린다”며 “더욱 신뢰받는 서울 지하철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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